생계 위해 취업전선 뛰어든 주부 늘었다

40대 여성구직자 1년 사이 6배 증가

지역내일 2003-08-12
전업주부로 15년을 살았던 40대 손 모씨는 남편이 느닷없는 감원으로 실직하게 되자 구직전선에 나섰다. 손 씨가 잡은 일자리는 한 음료회사 판매원.
신 모(45· 인천광역시)씨도 ‘요즘만큼 살기 힘든 때가 없다’고 한다. 최근 남편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그나마 부족하던 남편 수입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
7년 전부터 주말마다 실내 경마장에서 일을 해왔지만 40만원대의 주말 수입만으론 버틸 수가 없다. 마음이 급해진 신씨는 주중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지만 그 역시 언제 관두어야 할지 모르는 동네 건어물가게 파트타임 판매 사원. 그나마 비교적 젊어 보이는 신씨가 나이를 두세 살 줄여 말한 덕에 구한 일자리이다.
“나이가 드니까 식당에 취직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경험보다 대뜸 나이부터 묻고는 너무 많아서 안 된다는 데요 뭘….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식당일을 했지만 그건 아무 소용없더라고요.”

◆구직자는 늘고, 취업은 바늘구멍= IMF때보다 더하다는 경제불황을 맞아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주부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동안 주춤했던 주부 취업이 다시 생계형 취업 형태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채용정보업체인 인크루트가 자사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기혼여성의 수를 조사한 결과 1년 사이 기혼여성 구직자 수가 31.5% 증가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꾸준히 상승하면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 전체 신규 구직자는 16.4% 증가한 것에 비해 신규 기혼여성 구직자는 28.9%나 증가해 1년 사이 취업을 원하는 주부들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연령별로는 40대 주부들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는데 전년 동월대비 6배나 증가했고 지난달에 비해서도 7.5%나 늘었다.
하지만 현실은 주부들의 절실한 취업요구를 충족시킬 만큼 녹록치 않다.
2∼3년 전보다 20대 여성들의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부들의 채용이 많았던 직종마저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일곱 살, 네 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이경미(35·가명, 경기도 부천시)씨는 얼마 전부터 시간만 나면 생활정보지나 구인구직 사이트를 살펴본다. 하지만 쓸만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가정주부라는 현실 탓에 이씨의 구직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대부분 30대 미만의 직원을 뽑으니까 마땅히 연락해 볼만한 곳을 찾기도 어려워요. 간혹 나이제한이 없어서 연락을 해도 꼭 아줌마냐고 확인을 하던걸요. 애가 둘이란 얘기까지 하면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얼마 전 아르바이트를 지원할 때는 아예 이력서 뒤에 아줌마도 일 잘할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덧붙여 제출하기까지 했다.
경기 불황으로 음식점 경영이 어려워지자 취업에 나선 박 모(41)씨도 2개월 동안 3∼4차례의 면접을 봤다. 그러나 자격요건이 45세라고 명시되어 있던 회사도 대부분의 면접자가 20대였다. 결국 아직까지도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대부분 단순 일용직 = 이렇게 어려운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주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특정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간병인 같은 도우미직종이거나 계약직 또는 일용직의 단순 업무에 치우치는 것.
중앙고용정보원이 분석한 지난 6개월간 30대 이상 50대 이하 여성들의 취업 동향을 보면 취업률 80% 이상을 상회하는 직종은 모두 일용직에 해당한다. 조리업무를 제외한 음식서비스업이나 건설단순노무자, 제조 관련 노무자, 건물청소원 등이다.
고객관리 사무원이나 텔레마케터와 같은 시간제 근무 직종도 60%이상의 취업률을 보이고는 있지만 실제 구인구직이 이뤄지는 빈도수가 낮기 때문에 많은 기혼여성이 진출해있는 분야는 아니다.
연령별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30대 여성의 경우 경리사무와 같은 업무의 정규직을 원하는 사례가 적게는 1000여건에서 많게는 500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실제 취업률은 30%를 밑도는 낮은 수준이다.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갈수록 일용직과 계약직이고 정규직이라도 건물청소원과 같은 노무직을 원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취업이 성사된 사례를 살펴봐도 비슷하다. 보험 영업직이나 백화점 또는 할인점 등의 캐셔직과 고객상담직이 대다수이다. 파견회사를 통한 임시직이나 계약직이 대부분인 셈이다.
지난해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조사한 제4차 여성의 취업실태 조사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여성 고용구조의 연령 및 혼인상태에 따른 직종분리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노동시장이 저연령층 미혼여성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기혼여성은 고용구조가 열악하고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2차 노동시장에서 주부들이 받는 임금의 수준도 낮고 가사와 육아를 동시에 해야 하는 데에서 오는 시간 조절 등도 직장을 찾는 데에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어 좀처럼 주부 취업의 질적 향상은 가져오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지난 달 여성부에서는 향후 5년간 여성 일자리 50만개 창출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고학력 여성인력의 사회적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것. 일부 ‘주부 창업 지원’이나 ‘전업주부 재취업 지원’을 위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당장 생활을 위해 취업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주부들은 답답하다.

/ 진유강 기자 ·최규정(자유기고가) fotoreis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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