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 원폭투하 58주년을 맞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한국내 원폭 피해자들에게 원호수당을 주기로 했다는 그나마 다행스런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유전에 의한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들은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로부터 지난 58년 동안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평생을 육체적, 경제적 고통 속에 살았던 피폭 1세대의 불행한 삶을 고스란히 대물림한 원폭2세 문제를 세상에 알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형율(34·부산시 동구 수정동)씨 역시 선천적 면역체계 결핍으로 고통에 찬 삶을 버텨온 원폭2세대다.
◆피폭 후유증 폐기능 70% 손상 = ‘면역글로블린M의 증가를 동반한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긴 병명의 질환을 앓고 있는 김씨는 이미 폐기능의 70%가 손상됐다. 면역체계가 전혀 없어 화농성 세균 감염에 자주 노출되는 김씨는 중이염으로 고막에 구멍이 나 청력도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다.
163㎝에 37㎏인 깡마른 체구로 인해 나무 막대기와 같은 인상을 주는 김씨의 모습은 오랜 동안 병마에 시달려온 그의 삶을 짐작케 했다.
지난 5일 인권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기자회견 참석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을 다녀간 뒤로 상태가 더 악화된 김씨는 현재 부산대병원에 입원해있다.
어릴 때부터 반복해 발병하는 폐렴으로 초등학교도 3년을 채 못다닌 김씨의 삶은 입원과 퇴원의 반복이었다. 97년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 IMF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취업에 성공했지만 지하철 계단도 숨이 차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의 몸상태로는 도저히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반복되는 폐렴의 원인조차 몰랐던 김씨는 95년이 되서야 담당의사로부터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 병이 방사능에 의한 유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1년 재입원 당시 그의 병에 대한 소견을 중심으로 95년 작성됐던 의학논문을 입원차트에서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던 김씨의 어머니 이곡지(65)씨는 1945년 원자폭탄 투하 당시 6살이었다.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평생을 악성종양과 피부병에 시달렸다. 피폭2세대인 김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은 생후 1년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이러한 가족사 때문에 자신의 병이 막연히 원폭에 의한 후유증일 것이라 짐작했었지만 확증이 없었던 김씨가 ‘원폭2세대 환우’임을 확인하게 되기까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회적 편견으로 공개 꺼려 = 국내에서 원폭2세의 실태를 파악한 유일한 자료인 91년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들은 23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자신이 원폭2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이 공개될 경우 ‘유전병자’로 낙인찍혀 결혼이나 취업 등에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 김씨는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강한 원폭2세들로부터 압력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김씨 역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입원으로 지쳐갔던 김씨와 그의 가족들은 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도 원폭2세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지원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결국 그는 가족들을 설득해 지난해 3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병을 세상에 알렸고 현재 ‘원폭2세환우회(cafe.daum.net/KABV2PO)’라는 모임을 결성, 아픈 가운데서도 원폭 피해 2세대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국 원폭피해자는 외면 =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있다 피폭을 당한 한국인은 히로시마에서 5만명, 나가사키에서 2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4만여명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귀국했지만 대부분 피폭 후유증과 고령으로 숨졌다.
그러나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존재는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됐다. 일본 정부가 실시한 30여 차례의 실태조사에서도 한국인 피폭자들은 제외됐고 유전병을 앓고 있는 원폭2세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 원폭피해자들이 받은 보상금은 지난 91년과 93년 일본 정부가 내놓은 40억엔(400억원)가량의 민간기금이 전부였다.
원폭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 노력이 전무한 것은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고 한해 1조6000억원을 예산으로 쓰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실태조사는 물론 의료지원체계도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원폭1세대들은 식민지 시대 징용으로 끌려가 겪은 고통과 원폭 피해와 함께 사회로부터 방치된 채 가난과 질병이라는 3중고에 시달려왔고 이 고통은 2세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원폭피해자 문제는 피폭1세대는 물론 2세대, 3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며 “이제라도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원호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그러나 유전에 의한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들은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로부터 지난 58년 동안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평생을 육체적, 경제적 고통 속에 살았던 피폭 1세대의 불행한 삶을 고스란히 대물림한 원폭2세 문제를 세상에 알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형율(34·부산시 동구 수정동)씨 역시 선천적 면역체계 결핍으로 고통에 찬 삶을 버텨온 원폭2세대다.
◆피폭 후유증 폐기능 70% 손상 = ‘면역글로블린M의 증가를 동반한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긴 병명의 질환을 앓고 있는 김씨는 이미 폐기능의 70%가 손상됐다. 면역체계가 전혀 없어 화농성 세균 감염에 자주 노출되는 김씨는 중이염으로 고막에 구멍이 나 청력도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다.
163㎝에 37㎏인 깡마른 체구로 인해 나무 막대기와 같은 인상을 주는 김씨의 모습은 오랜 동안 병마에 시달려온 그의 삶을 짐작케 했다.
지난 5일 인권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기자회견 참석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을 다녀간 뒤로 상태가 더 악화된 김씨는 현재 부산대병원에 입원해있다.
어릴 때부터 반복해 발병하는 폐렴으로 초등학교도 3년을 채 못다닌 김씨의 삶은 입원과 퇴원의 반복이었다. 97년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 IMF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취업에 성공했지만 지하철 계단도 숨이 차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의 몸상태로는 도저히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반복되는 폐렴의 원인조차 몰랐던 김씨는 95년이 되서야 담당의사로부터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 병이 방사능에 의한 유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1년 재입원 당시 그의 병에 대한 소견을 중심으로 95년 작성됐던 의학논문을 입원차트에서 우연히 발견하면서부터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던 김씨의 어머니 이곡지(65)씨는 1945년 원자폭탄 투하 당시 6살이었다.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평생을 악성종양과 피부병에 시달렸다. 피폭2세대인 김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은 생후 1년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이러한 가족사 때문에 자신의 병이 막연히 원폭에 의한 후유증일 것이라 짐작했었지만 확증이 없었던 김씨가 ‘원폭2세대 환우’임을 확인하게 되기까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회적 편견으로 공개 꺼려 = 국내에서 원폭2세의 실태를 파악한 유일한 자료인 91년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들은 23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자신이 원폭2세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이 공개될 경우 ‘유전병자’로 낙인찍혀 결혼이나 취업 등에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제 김씨는 “이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강한 원폭2세들로부터 압력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김씨 역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입원으로 지쳐갔던 김씨와 그의 가족들은 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도 원폭2세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지원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
결국 그는 가족들을 설득해 지난해 3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병을 세상에 알렸고 현재 ‘원폭2세환우회(cafe.daum.net/KABV2PO)’라는 모임을 결성, 아픈 가운데서도 원폭 피해 2세대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국 원폭피해자는 외면 =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있다 피폭을 당한 한국인은 히로시마에서 5만명, 나가사키에서 2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4만여명이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귀국했지만 대부분 피폭 후유증과 고령으로 숨졌다.
그러나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존재는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됐다. 일본 정부가 실시한 30여 차례의 실태조사에서도 한국인 피폭자들은 제외됐고 유전병을 앓고 있는 원폭2세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 원폭피해자들이 받은 보상금은 지난 91년과 93년 일본 정부가 내놓은 40억엔(400억원)가량의 민간기금이 전부였다.
원폭 피해자에 대한 대책 마련 노력이 전무한 것은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고 한해 1조6000억원을 예산으로 쓰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실태조사는 물론 의료지원체계도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원폭1세대들은 식민지 시대 징용으로 끌려가 겪은 고통과 원폭 피해와 함께 사회로부터 방치된 채 가난과 질병이라는 3중고에 시달려왔고 이 고통은 2세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원폭피해자 문제는 피폭1세대는 물론 2세대, 3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며 “이제라도 원폭피해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와 원호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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