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④ 경제외교 바라보는 경제계 시각

단기성과 집착말고 길게 보고 접근해야

지역내일 2003-05-07 (수정 2003-05-07 오후 3:54:56)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둔 경제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신중한 기대감’으로 요약된다. 경제계의 기대감은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으로 한미간의 불편한 긴장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강연웅 해외건설협회 플랜트지원실장은 “우리의 참전 결정 이후 미국 정부에서 (한국을) 도와야겠다는 인식이 나오는 것 같다”며 “대통령의 방미는 시기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외교’를 방미의 핵심 키워드로 삼은 청와대의 움직임도 재계로선 기대해볼 만한 대목이다.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은 6일 청와대 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의 방미가 지닌 의미를 설명하면서 “한미 통상문제 등 현안을 원만하게 해결해 대미 경제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목적도 크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 자신도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미동맹의 우호관계 확인과 북핵 해결의 공조관계 강화 등 방미의 정치적 목적이 결국은 “안보환경이 경제에 미치는 불안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11일부터 6박7일간 진행될 노 대통령의 방미 여정은 경제외교란 ‘테마’를 중심으로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국제금융계 인사, 월스트리트의 경제지도자, 실리콘밸리의 IT 관계자 등을 두루 접촉할 예정이다. 특히 15일 이라크 재건사업의 주기업으로 선정된 벡텔사 라일리 회장과의 면담과 하루 뒤인 16일 인텔 본사 방문 일정은 경제외교의 성과와 관련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방미 성과의 구체적 결과물에 대해 경제계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집권 초기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에 대한 ‘노무현식 어법’이 가져온 미국측의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의 한 임원은 “현 정부를 좌파성격의 정권으로 보는 미국의 의심을 해소해야 경제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충고했다. 경제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반한감정 해소 문제다.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정치적 코드 맞추기란 신뢰회복을 이루지 못하면 경제협력은 구두선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경제계 인사들은 경제분야의 성과를 위해 노 대통령이 ‘크고 작은 두 개의 그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큰 그림이란 미국에 무엇을 줄 것인가를 제시하는 정치적 접근이다. 삼성측의 한 관계자는 이를 “최우방 국가란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일”로 표현했다. 앞의 대기업 임원은 “동맹관계에 대한 신뢰와 함께 노동문제에 대한 공평한 접근, 투자불안 해소 등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추진돼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내 인맥과 우리 경제계 인사들 사이의 끈이 형성될 수 있다는 논리다.
경제계 인사들이 요청하는 ‘작은 그림’에는 15억 달러에 달하는 우리 기업들의 이라크 미수채권과 이라크 전후복구 사업 참여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채 훈 KOTRA 무역진흥본부장은 “대통령이 길게 보고 접근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장 전후특수만을 노리고 덤벼들면 기업이나 정부나 모두 역풍을 맞기 십상이란 현실 인식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 강연웅 실장도 “기업들도 상업주의 차원보다는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장기적 접근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며 “벡텔 등 유력 업체에 한국의 이미지만 심어줘도 큰 도움이 된다는 선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상범·오승완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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