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살찐 독수리’와 이라크 소년(안병찬 2003.04.17)

지역내일 2003-04-17
‘살찐 독수리’와 이라크 소년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1994년 퓰리처상의 사진기획부문을 수상한 사진은 〈굶주린 수단 소녀〉(원제 Starving Sudanese Child)였다. 기아로 기진맥진하여 꼬부라져 쓰러진 어린 수단 소녀와 그 등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살찐 독수리 한 마리. 이 장면을 잡은 사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전쟁 사진 전문기자 케빈 카터였다.
1993년 내전 속의 기근과 기아의 실태를 보도하기 위해 수단 남부로 들어간 카터는 식량배급소로 가다가 메마른 공터에서 힘이 다해 무릎을 꿇고 고꾸라진 소녀를 발견했다. 카터는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기를 기다리며 약 20분을 대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독수리가 끝내 날개를 펴지 않자 셔터를 누른 후 독수리를 쫓아버렸다. 뒷날 한 동료 기자는 카터가 신을 향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즈 신문이 사진을 게재한 것은 1993년 3월. 큰 반향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이 수단 소녀의 운명에 관해 물었다. 이듬해 5월 카터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갈채와 함께 비판이 따랐다. 어린이의 고통 앞에 렌즈를 조정한 행위는 또 하나의 독수리가 현장에 있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가 왜 소녀를 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동료도 있었다. 두 달 후 카터는 요하네스버그의 강가에서 자기 픽업 트럭의 배기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자살했다. 조수석에서 유서가 나왔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합니다. 기쁨은 존재하지도 않는데 삶의 고통이 기쁨을 유린했습니다.”

전쟁 사진기자 케빈 카터의 윤리적 고통
카터는 첨예한 윤리적인 고통에 시달린 모양이었다. 전쟁의 위험 속에서 일해온 카터는 강한 사명감과 이상주의로 무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사진에 담은 현실의 공포를 가슴 밑바닥에 품고 있던 그는 어린 딸을 남긴 채 33살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것이다.
세계를 울린 카터의 수단 소녀 사진과 카터의 삶의 고통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내일만평(4월4일자) 때문이다. 시사만평가 김경수는 〈이라크 침략전쟁〉 실상을 카터의 〈굶주린 수단 소녀〉로 절묘하게 재현했다. 죽어가는 어린 소녀는 이라크의 주권이자 이라크의 무고한 국민이다. 살찐 독수리는 침략자인 ‘독수리 샘’(미합중국)이다. 사막의 지평선에는 석유 전쟁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빨리 좀 죽어라”하고 이라크의 절명을 독촉하는 독수리. 전후 석유이권과 재건사업을 독점하려는 미국과 영국 동맹, 침을 흘리며 다시 추파를 던지는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열강의 사악한 ‘국익들’이 연상된다.
지금 침략에 의해 폐허가 된 문명의 고도 바그다드에는 〈굶주린 수단 소녀〉와 비견할 〈이라크 소년 알리의 절망〉이 아이콘으로 부각되었다. 영국 대중신문 데일리 미러의 바그다드 특파원 스티븐 마틴이 ‘블레어와 부시에게 보내는 간호사의 절망적인 탄원’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일면에 올린 것은 4월14일자. 열 두 살짜리 소년 알리 이스마엘 아바스는 두 손이 어깨 밑에서 절단되고 전신의 60%에 3도 화상을 입어 죽어가고 있다. 미소년 알리의 처참한 사진 한 장, 임시로 급조한 금속 보호골조 아래 누워있는 소년의 사진은 ‘가슴을 찢어지게 만드는’ 무고한 희생의 상징이다.
다음은 알리의 담당 간호사 파틴 무씬 샤라의 탄원서.
“총리 및 대통령 귀하. 내 이름은 파틴입니다. 바그다드 로파디아 간호학교를 나와 1990년부터 병원에 근무하지만 화상 전문가가 아닙니다.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알리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알리는 아직도 이곳에 있습니다. 아이는 죽어 갑니다. 제발 당신들의 헬리콥터나 비행기 한 대를 보내주세요. 당신들은 우리들을 폭격하고, 알리의 집을 미사일로 불태운 모든 기술을 가지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비행기 한 대를 단 하루 내 줄 수 없단 말인가요?

소년 알리의 절망, 윤리적 고통없는 이라크전
알리는 아름다운 소년입니다. 그 아이는 가족과 두 팔을 전부 잃었어요. 당신들은 살릴 수 있는 어린이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간호사의 마음을 이해합니까. 그는 아직 살아있지만 패혈증으로 죽게 됩니다. 우리는 헬리콥터와 비행기가 없지만 당신들은 있습니다. 가슴속으로 도움을 청합니다.”
알리는 미국의 무차별 미사일 폭격으로 아버지와 임신한 어머니 그리고 형을 잃었다. 블레어 총리도 이런 보도에 접하자 대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데일리 미러지는 다우닝가(영국 총리공관)가 할 일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온 미 국방성에 압력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어제 알리는 쿠웨이트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없어진 두 팔과 가족은 되돌려 받지 못한다. 미국은 이라크에 자생적 친미 정권을 세우고 원유산업을 장악하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모양이다. 부시와 블레어의 이라크 침공 전쟁에서는 케빈 카터의 ‘도덕적 고뇌’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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