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돈지갑 꽉 잠궜다’

소비심리 ‘위축’, 물가·경상수지 ‘휘청’ … 뚜렷한 묘책없어

지역내일 2003-03-10 (수정 2003-03-10 오후 4:48:29)
맞벌이 부부인 이 모(남·35)씨와 정 모(여·33)씨는 며칠전 조용한 결혼기념일을 보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퇴근후 백화점에 들려 맘에 드는 선물을 교환하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 외식도 했지만 올해는 집에서 케익을 놓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데 만족하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국내경기가 심각하다고 매일 떠들어대고, 근무하는 회사 사정도 좋지않다보니 한푼이라고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일치됐기 때문이다.
서울 망원동에 거주하는 박 모(남·65)씨는 최근 동네 고등학생이 타던 자전거를 5만원주고, 건네받았다.
3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시 상수동에서 경비로 일하는 박씨는 직장에 나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는 등 하루 왕복 교통비만 1800원정도 들었다. 하지만 자전거로 출퇴근할 경우 한달 조금 지나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소비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3월 봄날이 오면 소비심리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다수 중산층의 지갑은 닫혀서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백화점·홈쇼핑 3월매출도 저조 = 지난 2월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백화점의 매출이 7∼1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을 때만 해도 3월이 되면 나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보편적인 분석이었다. 소비심리가 냉랭하기는 했지만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설 특수가 1월에 미리 반영됐다는 위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사실과 일치되지 않았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요즘에도 명품은 꾸준히 판매되지만 경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남성의류나 여성정장, 가구 판매는 지난 2월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미 소비자들은 당장 필요한 제품이 아니면 다음에 사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는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을 하며 유통의 한 축으로 성장한 TV홈쇼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LG홈쇼핑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매월 성장률이 70∼80%에 달했지만 올해들어 10% 성장률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홈쇼핑 산업이 어느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이유도 있지만 불투명한 경기에 따른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이 주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가장 큰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던 인터넷 쇼핑몰도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이 9일 발표한 ‘1월 사이버쇼핑몰 통계조사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쇼핑몰 거래액은 5868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0.2%(9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설을 앞둔 1월 성장률이 13.3%였던 점과 크게 대비된다.

◇전문가 “정부는 미시 조정, 국민은 내핍”= 내수부진으로 생산 및 출하 둔화 = 하지만 문제는 뚜렷한 해법없이 이러한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미·이라크 전쟁 고조와 북핵문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3대 실물 경제지표인 물가·경상수지·성장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에서도 주가가 폭락해 종합주가지수 500대로 떨어졌으며, 코스닥은 연일 최저치를 갱신중이다.
기름값 급등으로 수입이 크게 늘면서 무역수지 3개월연속 적자가 우려되고, 소비자물가는 치솟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내수부진으로 생산 및 출하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선행지수 전년동월비와 기업경기실사지수의 하락세도 지속되고 있어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박 승 한은 총재는 최근 경제상황과 관련 “정부는 미시적 조정으로 경제적 고통을 줄이고 국민은 내핍으로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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