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가>

지역내일 2003-01-08
어느 농민운동가의 삶 – 완주군 농민회 송용근씨 작고
“너무 다정한 당신과 나를 하늘이 시샘 했나 봅니다”
80년대 민주화 의지 고스란히 농촌으로 가져간 40세 젊은 농부 간암 투병 중 작고

흰 눈보다 더 순결했던 사람아
눈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 밖에 나갈 궁리를 아예 버리고 편지를 쓴다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길이 이렇게 눈에 막혀 막막한 날에는 시를 쓰고 싶어진다는 마음을 담아
내게 보내왔던 그대의 편지구절이 아직도 생생한데 …
(중략)
새처럼 훨훨 먼 길 편안히 잘 가게.
어제도 오늘도 서로의 삶이 거울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었듯이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네. 동지는 저쪽 세상에서, 나는 이승에서...
송용근, 용근이 이 사람 잘 가게.
흰눈보다 순결했던 동지여 부디 잘 가게.
-2003년 1월7일 농민회관 광장 노제에서 시인 문병학-

6년만의 폭설이라는 큰 눈이 내리던 지난 5일,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농민운동가 송용근(41.완주군 이서면)씨가 아내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학창시절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고인을 기억하는 동료들은 무거운 침묵과 함께 굵은 눈물만 ‘뚝 뚝’ 흘려야 했다.
완주군 이서에서 태어난 송씨는 1982년 전북대 국문과에 입학한 문학지망생 이었다. 학생운동에 참여해 학원민주화투쟁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1988년부터 고향에 정착한다. 완주군 농민회에 몸 담은 뒤 잇단 쌀 시위 등으로 또 한번의 옥고를 경험하기도 했다.
2001년 간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한 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그 해 6월 역사적인 ‘남북 농민한마당’이 열린 금강산 행 배에 몸을 실었다.
쌀 값 폭락에 따른 농촌문제 해결에 열성이던 송씨는 피로가 겹쳐 암이 재발했고 큰 눈이 내리던 날 일어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났다.

‘동네 어귀 정자나무 같던 사람’
전태일 열사가 온 몸을 불사르기 전에 순박한 청년이었고, 고 문익환 목사가 수풀 하나의 흔들림에도 가슴을 저미는 순수시인이었던 것처럼, 이땅의 많은 투사들은 대개 순진한 청년이었다.
송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절친한 동료였던 방용승(전북통일연대 집행위원장)씨는 “동료들의 사소한 일에도 함께 아파해 주고 즐거워 해준 사람”이라며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 듬직한 형”이라고 말한다. 천천히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 덕택일까. 그는 지역 농민운동가들 사이에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가 돼 있었다.
특히 사람에 대한 그의 애정은 동료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함께 활동했던 유두희씨는 “학생시절에도 그랬고 농민운동 하면서도 그의 최고 재산은 사람이었다”면서 “한 달이건 두 달이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라고 말했다. ‘동네 어귀 정자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후배나 친구들에게도 ‘언젠가는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방용승씨는 “욕심내지 않고 10년 20년 내다보면서 걷던 형인데 이렇게 빨리 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결혼은 사람에 대한 신의와 신뢰를 잘 보여주는 일화.
1989년 결혼한 교사인 부인과는 중학교(이서 삼우중) 동창으로 그때부터 좋아했던 사이였다고. 오죽하면 그의 부인은 “애기아빠와 내가 너무 다정해 하늘이 시샘 해 먼저 데려간 모양”이라고 말했다.
손이 많이 가 농촌에서 꺼린다는 담배 등을 재배하면서도 농민회 활동에 열성을 보이며 ‘포기’를 몰랐던 농민운동가 송씨는 결국 그렇게 좋아했던 친구와 선후배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먼 길을 떠났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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