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정치인’이 되는 까닭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 박사
바야흐로 국회의원들이 짐싸기와 짐풀기로 바쁘다.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철새 정치인’이 떼지어 날고 있다. 양지를 쫓아 가는 그 활동력과 기민함이 정책개발과 국정운용에서 발휘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민주당은 ‘철새 작전’으로 분당 위기에 있다. 혁명적이라던 국민경선도, 노무현 후보의 72%라는 절대적 지지도, 소신 있는 정치에 대한 다짐도 다 팽개치고 이제 과거를 묻지 않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명분 없는 싸움에 나설 전망이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 정도 계속해서 왜(why) 그런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한다. 가령 공장 작업 중 제품에 불량이 났을 때 왜 불량이 났는가를 물으면 작업자가 집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그 답변을 가지고 주의를 주고 앞으로 정신차려 일하게 하라는 처방을 내리면 그것은 하나마나한 처방이고 안한 것과 마찬가지다. 왜 작업 중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나를 물어야 한다. 작업환경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작업환경이 어수선하게 되었는가? 작업장 배치가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또, 왜 작업장 배치가 체계적이지 못한가라는 식으로 계속된 질문 결과를 가지고 본질적 처방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다. 왜,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짐꾸리고 짐풀기에 바쁜가? 이번 대선에 지는 정당에 남아 야당으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럼 왜, 죽어도 야당은 안하겠다고 하는가? 야당 의원은 다음에 출마해서 당선(reelection)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권력·의원직 보장없는 야당은 싫어
왜, 야당은 당선되기 어려운가? 지역구민에게 베풀어줄 권력도 없고 돈도 안 들어와 선거 치루기도 어려울 뿐더러 검찰 등 권력기관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왜, 권력도 없고 돈도 모이지 않고 권력기관의 집중적 견제를 받는가? 당연하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권력이 무소불위하며 권력의 운용이 불투명하고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견제와 균형 없이 일방적으로 집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야당을 하면 안 되는 정치구조가 되었다. 대통령의 권력이 무섭고 여당의 힘이 엄청나기에 그 모진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철따라 따뜻한 곳으로 이동을 감행해야하는 것이다. 현실이 그런데 살겠다는 정치인에게 그 형극(荊棘)의 길을 가면 좀 어떠냐는 말은 사치스런 얘기일지 모른다. 불량을 만드는 작업자에게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우왕좌왕하는 그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만한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이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권력이 시켜 후보 만드는데 참여했고 덩달아 춤췄을 뿐인데 이제 그 권력이 그게 아니라는데 딴 데 가서 먼저 자리 잡는 것이 장땡일 뿐이다.
누가 누구를 욕하랴? 그 같은 마음이 내게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는데. 그들을 손가락질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 같은 비난은 한두 해,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다. 처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대통령의 시종(侍從)이 되어버린 국민 주권기관이자 입법자인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고 균형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키는 일이다.
어차피 완벽한 대통령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로 하여금 권력을 견제하게 하는 방법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청문 대상을 확대하고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기관과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벗어나 있는 특별검사에 맡기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다.
다른 하나는 일관성 없는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가혹한 징계다. 징계권을 가진 유일무이한 사람은 바로 유권자다. 5년 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진후 당을 떠난 국회의원만 47명에 이른다.
유권자, 떡고물 유혹 버리고 엄중한 심판을
DJ나 JP의 공동여당으로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회의장·부의장, 장관, 상임위원장, 사무총장 등에 진출하여 권력의 떡고물과 달콤함을 챙겼다. 징계는커녕 한자리씩 챙겼기에 대명천지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정치다운 정치보다 떡고물의 일부라도 나눠받기를 원하며 지역구민에게 실리를 가져다주는 것이야말로 표(票)가 된다는 오랜 경험칙에 따른 행동이다.
정말 그런가. 그 대답은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관까지 한 사람이라고 대견해하지 않았나 다시 한번 돌아볼 때다.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당 실력자여서 지역예산 몇십 억을 더 따왔다고 자랑하지 않았나 생각해봐야 한다. 내 자식 결혼식에, 혹은 부모님 장례 때 국회의원 누구누구가 찾아왔고 얼마의 부조금을 내고 갔다고 뿌듯해하고 싶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있다. 그래서 더 슬픈 거다.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 박사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 박사
바야흐로 국회의원들이 짐싸기와 짐풀기로 바쁘다.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철새 정치인’이 떼지어 날고 있다. 양지를 쫓아 가는 그 활동력과 기민함이 정책개발과 국정운용에서 발휘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민주당은 ‘철새 작전’으로 분당 위기에 있다. 혁명적이라던 국민경선도, 노무현 후보의 72%라는 절대적 지지도, 소신 있는 정치에 대한 다짐도 다 팽개치고 이제 과거를 묻지 않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명분 없는 싸움에 나설 전망이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 정도 계속해서 왜(why) 그런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한다. 가령 공장 작업 중 제품에 불량이 났을 때 왜 불량이 났는가를 물으면 작업자가 집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그 답변을 가지고 주의를 주고 앞으로 정신차려 일하게 하라는 처방을 내리면 그것은 하나마나한 처방이고 안한 것과 마찬가지다. 왜 작업 중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나를 물어야 한다. 작업환경이 어수선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작업환경이 어수선하게 되었는가? 작업장 배치가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 또, 왜 작업장 배치가 체계적이지 못한가라는 식으로 계속된 질문 결과를 가지고 본질적 처방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다. 왜,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짐꾸리고 짐풀기에 바쁜가? 이번 대선에 지는 정당에 남아 야당으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럼 왜, 죽어도 야당은 안하겠다고 하는가? 야당 의원은 다음에 출마해서 당선(reelection)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권력·의원직 보장없는 야당은 싫어
왜, 야당은 당선되기 어려운가? 지역구민에게 베풀어줄 권력도 없고 돈도 안 들어와 선거 치루기도 어려울 뿐더러 검찰 등 권력기관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왜, 권력도 없고 돈도 모이지 않고 권력기관의 집중적 견제를 받는가? 당연하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권력이 무소불위하며 권력의 운용이 불투명하고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견제와 균형 없이 일방적으로 집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야당을 하면 안 되는 정치구조가 되었다. 대통령의 권력이 무섭고 여당의 힘이 엄청나기에 그 모진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철따라 따뜻한 곳으로 이동을 감행해야하는 것이다. 현실이 그런데 살겠다는 정치인에게 그 형극(荊棘)의 길을 가면 좀 어떠냐는 말은 사치스런 얘기일지 모른다. 불량을 만드는 작업자에게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우왕좌왕하는 그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만한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이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권력이 시켜 후보 만드는데 참여했고 덩달아 춤췄을 뿐인데 이제 그 권력이 그게 아니라는데 딴 데 가서 먼저 자리 잡는 것이 장땡일 뿐이다.
누가 누구를 욕하랴? 그 같은 마음이 내게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는데. 그들을 손가락질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 같은 비난은 한두 해,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다. 처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대통령의 시종(侍從)이 되어버린 국민 주권기관이자 입법자인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고 균형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키는 일이다.
어차피 완벽한 대통령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로 하여금 권력을 견제하게 하는 방법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인사청문 대상을 확대하고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기관과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벗어나 있는 특별검사에 맡기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진전이다.
다른 하나는 일관성 없는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가혹한 징계다. 징계권을 가진 유일무이한 사람은 바로 유권자다. 5년 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진후 당을 떠난 국회의원만 47명에 이른다.
유권자, 떡고물 유혹 버리고 엄중한 심판을
DJ나 JP의 공동여당으로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회의장·부의장, 장관, 상임위원장, 사무총장 등에 진출하여 권력의 떡고물과 달콤함을 챙겼다. 징계는커녕 한자리씩 챙겼기에 대명천지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정치다운 정치보다 떡고물의 일부라도 나눠받기를 원하며 지역구민에게 실리를 가져다주는 것이야말로 표(票)가 된다는 오랜 경험칙에 따른 행동이다.
정말 그런가. 그 대답은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관까지 한 사람이라고 대견해하지 않았나 다시 한번 돌아볼 때다.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당 실력자여서 지역예산 몇십 억을 더 따왔다고 자랑하지 않았나 생각해봐야 한다. 내 자식 결혼식에, 혹은 부모님 장례 때 국회의원 누구누구가 찾아왔고 얼마의 부조금을 내고 갔다고 뿌듯해하고 싶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있다. 그래서 더 슬픈 거다.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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