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 이혼상담 부쩍 늘었다

외도·폭력 이어 부부갈등 20% 차지

지역내일 2002-09-10 (수정 2002-09-11 오후 4:45:30)
카드빚으로 시작된 부부갈등 때문에 이혼상담을 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9일 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전체 부부갈등 가운데 외도나 폭력 다음으로 많은 대략 20% 가량의 이혼상담이 카드 빚과 관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남편이 카드 한도액을 초과해 사용하고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다. 이 경우 아내는 남편이 저질러 놓은 빚 뒤치다꺼리를 하다 지친 끝에 결국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카드빚 이혼사유 3위= 본인이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경우에는 아내의 카드를 사용해 대출을 받아 문제가 된 경우도 많았다.
결혼 5개월인 박은숙(28·서울 동작구)씨는 요즘 심각하게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 6개월 동안 교제하다가 결혼한 남편이 박씨 명의의 카드로 2600만원을 빼서 썼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
남편은 알고 보니 전에도 이미 도박으로 8000만원 빚을 져 결혼 직전에 시집에서 갚아 준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도박 빚이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한수정(29)씨는 ‘사채 이자보다는 싸겠거니’ 하는 마음에 자신의 카드를 빌려주었던 경우.
“결혼 직전에 남편이 사업을 해보려는데 신용불량이라 사채밖에 쓸 수 없다고 해요. 카드 이자가 사채보다 쌀 것 같아서 내 카드를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 도박하느라고 다 썼더라구요.”
시어머니가 집을 담보로 8000만원 정도를 갚아주었고 나머지는 김씨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 해결했다. 김씨는 “혼자 독립해 살 생각인데 남편이 또 내 카드를 사용할까봐 겁이 난다”며 이혼을 해서라도 남편에게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혼소송 하며 아내 카드 발급 받기도= 아내의 카드를 몰래 사용하거나 아내 명의의 카드를 몰래 발급 받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정연아(30)씨는 남편이 사업자금으로 사용한 카드빚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정씨가 카드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에 보태준 데다 남편이 정씨 모르게 카드를 담보로 끌어다 쓴 돈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너무 힘들어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하면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느냐”고 상담해왔다.
결혼 7년 후 이혼한 김정희(가명·30)씨는 아직까지도 남편과 카드 빚으로 얽혀있다.
7살과 4살된 두 딸을 데리고 친정에 피신해있는 동안 남편은 이혼소송을 제기했는데 남편이 그때 김씨의 카드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남편이 쓴 돈은 1700만원 가량. 물론 남편은 돈을 갚지 않았고 신용불량자가 된 건 남편이 아닌 김씨다.
무리한 카드빚을 얻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 여성들의 경우 본인이 직접 카드대출을 받더라도 생활비와 관련된 쓰임새가 많고 액수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성 카드빚은 대부분 생활비= 남자들이 카드빚을 지는 가장 큰 원인은 도박, 주식투자, 사업자금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20·30대의 경우 향락이나 소비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고 40대 이상은 무리한 투자를 반복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카드빚이 문제가 되면 대체로 다른 갈등 사유와 겹쳐 이혼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최근 들어 카드빚 때문에 이혼을 해야겠다는 상담문의가 급증했고 이혼상담까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카드빚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상담해오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신용카드의 경우 당장 현금이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돈’이라는 인식이 강해 무리한 카드빚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경제위기의 후유증이 몇 년 지난 지금에야 나타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성홍식·김진명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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