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현장의 혁신적인 수업 모습을 보여주는 EBS 다큐 <클래스업 교실을 깨워라>에 강방식 교사의 토론 수업 현장이 공개됐다.
20년 가까이 토론 수업을 우직하게 실천중인 강 교사. 학생들에게 논리력, 융합적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 그가 택한 윤리 수업 방식이 토론이다. 다큐에서는 각자의 논리를 갖춰 찬성, 반대 의견을 발표 후 논쟁과 설득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학생들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있다.
“다큐를 본 교사들은 ‘쉬어 보이는데 실제론 쉽지 않은 수업’을 어떻게 하냐고 묻더군요” 강 교사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2011년 인연을 맺은 뒤 실제 수업 현장을 관찰했고 동료 교사와 융합토론수업을 확산시키려 애쓴 과정을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나는 섬세한 수업 설계,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설득해 토론에 참여시키는 끈기, 옳은 수업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덕분이라 생각한다.
Q. 토론에는 말하기,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말과 글은 입시뿐만 아니라 일생을 살면서 중요한 스킬입니다. 문해력, 사고력, 논리력, 표현력이 그 안에 녹아있기 때문이죠. 토론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할 때 핵심은 무엇인가요?
주제에 맞춰 네이버, 구글 검색해 필요한 자료를 찾아 내용을 요약하고 간단한 의견을 덧붙이는 건 한 시간 수업 안에도 끝낼 수 있어요. 하지만 겉핥기식 글쓰기라 융합적 사고력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더군요.
논리를 갖춘 1500자 내외 칼럼 글쓰기를 목표로 6~9차시 수업으로 재설계했습니다. 개인별로 관심 주제를 정한 후 문제 현황 분석, 원인 발견, 문제 해결책 제시, 반론과 재반론까지 단계별로 쪼개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첫 단계인 자료조사는 누구나 손쉽게 하는 뉴스검색부터 관련 책과 전문 저널, 디비피아 같은 논문검색사이트까지 폭넓게 활용하게 했습니다. 조사한 자료를 간추려 현황 분석, 원인 발견 과정을 단계별로 글로 쓰게 했습니다. 원인을 제시할 때 중요한 건 범주화입니다. 일례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란 물음에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란 분석은 단편적인 답변이죠. 하지만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요인 등 세부적으로 범주화하면 원인을 깊고 넓게 살필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자신만의 해법을 도출하는데 범주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걸 바탕으로 문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특히 본인의 관심 진로와 연계해 솔루션을 찾아보도록 유도합니다. 이걸 가지고 모둠별 토론을 통해 반론, 재반론을 거치며 수정 보완해 장문의 칼럼을 완성하죠. A4 3페이지 분량의 활동지에 이 모든 과정이 담깁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힘들어합니다. 숏츠 영상, SNS의 짧은 글에 익숙한 아이들이 긴 글 읽기를 버거워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끙끙댑니다. 하지만 훈련이 거듭되면 글의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운동부, 성적 7등급 이하 학생도 모두 완성하더군요. 고비를 넘기고 성취감을 맛보며 아이들은 서서히 성장합니다.
Q. 20년 토론 수업을 통해 반별 – 모둠별 - 개인별 맞춤 지도로 진화한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글쓰기 지도는 개인별로 진행해야 효과가 큽니다. 완성된 글을 놓고 빨간펜 첨삭은 하지 않아요. 대신 자료조사부터 지켜보며 단계별 과정에서 필요한 코멘트를 하고 힌트를 줍니다. 모둠별 토론을 유도해 반론, 재반론을 거치며 본인의 논리를 정교하게 가다듬습니다. 교사인 저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 한명 한명을 만나 피드백하고 필요한 도움을 줍니다. 덕분에 학생 개개인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이 150명이 넘는데 진로, 관심사가 다 보입니다. 아이들과 라포가 형성돼 좀 더 밀착해서 케어할 수 있더군요. 학생의 글쓰기 완성도와 성적의 상관 관계를 꾸준히 살펴보고 있어요. 흥미롭게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논리적인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7등급 학생의 날카로운 글을 보며 놀라기도 합니다. 각자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어 학생에게 건네는 격려의 한마디도 구체적이죠.
Q. 토론 수업에서 교사는 정교한 수업 설계, 자료 준비, 학생 관찰, 적절한 피드백까지 총감독 역할을 하네요.
학생마다 글의 주제가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 저도 같이 공부하고 필요한 보충 자료 제시합니다. 적절한 피드백은 교사의 내공에서 나오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하죠. 토론이 낯선 아이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중요해요. 저는 말하기, 글쓰기는 10년, 20년 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해요. 깊고 넓은 사고력과 고급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제자를 기르고 싶은 교사로서의 사명감까지 이야기하면 아이들도 귀 기울이며 따라옵니다(웃음). 아이들의 개별 결과물은 학생부에 기록이 됩니다.
Q. 고3 윤리수업을 토론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3 담임을 여러 해 맡고 있습니다. 입시는 중요하죠. 아이들의 수능 공부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며 학습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학교, 인강, 학원의 ‘듣기’식 수업으로는 아무리 일타 강사급의 실력자가 가르쳐도 내용 흡수력은 30% 정도입니다. 수능은 대충이 아니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부한 내용을 본인의 언어로 설명하고 친구들이 덧붙이거나 반론하는 토론식 수업으로 바꿨습니다. 수능에 나오는 고난도 문제는 따로 설명을 덧붙이고 문제풀이도 병행합니다. 능동적 배움에 호응이 좋습니다.
Q.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활기찬 수업은 교사들의 로망입니다. 강의식 수업을 벗어나고 싶은 교사들을 위한 수업 멘토링, 강의를 꾸준히 펼치며 토론수업 확산을 위해 애쓰고 있으며 서울시교육청의 ‘생각을 쓰는 교실’, ‘심층쟁점독서토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요즘 국제바칼로레아 IB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한국형 IB 모델 만들기에 힘쓰고 있고 2019년부터 ‘생각을 쓰는 교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등부팀장을 맡아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토론수업 노하우를 공교육 선생님들에게 공개합니다. 멘토링도 진행해요. 교실 수업에 적용해 본 후 1500자 꽉 채운 아이들의 완성도 있는 칼럼을 보며 뿌듯해 하는 동료 교사들을 보면 저 역시 흐뭇합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심층쟁점독서토론’도 의미있는 프로그램입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박사급 연구자가 참여해요. 지난해 동북고는 의생명 분야에 관심있는 학생 10명을 모아 동료 교사 4명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생명을 주제로 석학의 책, 외국 저널을 읽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개인별 결과물을 완성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수님은 토론에서 나온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며 학생 개인별로 피드백을 주고 최신 연구 사례와 이슈 같은 현장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앎은 실천이 중요하죠. 학생들에게 생명을 주제를 관심 분야를 실천해 보라는 미션을 줬습니다.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리거나 국내와 외국 생명윤리 학회에 질의서를 보내기도 하고 지역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물을 보여주더군요.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서울시교육청 우수 사례로 발표하자 여러 곳에서 관심을 보이며 질문 세례들 받기도 했습니다.
Q. 자녀의 토론 역량을 키워주려면 학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선생님의 사례를 들려주세요.
아들이 어릴 때부터 말하기, 글쓰기 훈련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아직까지 집에서 종이신문을 구독합니다. 어릴 때는 사진과 그 아래 캡션을 함께 보며 의견을 주고받다가 아이가 커갈수록 기사의 큰 제목, 짤막한 글, 책으로로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뭘 말하고 있지?’ ‘네 생각은 어떠니?’ 끊임없이 묻고 대화합니다.
교실에서 학생들 발표를 시켜보면 웅얼거리거나 발음을 뭉개져 전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아들에게 낭독을 꾸준히 시켰습니다. 신문기사, 책을 분량을 정해 또박또박 읽도록 했습니다. 아들이 싫어하고 짜증낼 때도 많지요(웃음). 끈기있게 설득하며 실천하는 중입니다.
EBS 다큐 <클래스업 교실을 깨워라> www.youtube.com/watch?v=YNAnHpA58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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