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이지만 도서관이나 동네 책방에서, 혹은 누군가의 소개로 만난 책 한 권이 때로는 즐거움과 작은 위로가 되고 생활의 활력소와 고민 해결사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는 “아무리 시간이 변해도 책의 힘은 영원하며 책은 영원한 인간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놀이터다”라고 말했지요. 매일 매일을 책 읽을 시간 없이 바쁘게 생활하는 우리 지역 학생들에게 그런 책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바람을 담아 내일신문이 우리지역 중·고등학교 교사가 의미 깊게 만난 책을 엿보는 ‘선생님의 책꽂이’로 매월 찾아갑니다.
한 인간을 통해 보이는 전쟁의 폭력과 광기
정발중학교 백창수(역사과) 교사가 소개하는 책은 미국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이다. 정발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그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러한 전쟁에서의 폭력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트라우마로 작용하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꼽는 책의 장점은 작가가 너무 진지하게 않게, 블랙 유머를 통해 전쟁의 폭력과 광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소재에 대해 진부하게 느끼거나 지루하다는 생각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5 도살장>은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융단폭격으로 14만 명이 희생되고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된 독일 드레스덴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남은 연합군 병사 ‘빌리 필그림’의 기억이 중심이 돼 펼쳐지는 반전(反戰)소설이다. 그 당시 전쟁에 군인으로 참여해 죽은 수많은 소년들. 소설에서는 그 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전쟁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지닌 채 살아가는 주인공 빌리의 일상이 그려진다. 그는 죽음과 폭격의 기억으로 이유 없이 자주, 자기도 모르게 울면서도 죽음이 일상이었던 전쟁의 기억으로 죽음에 무감각해져 버린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트랄팔마도어 행성에 가게 되고 거기서는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외계인에게 묻는다. 하지만,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를 이야기한다”라는 대답만을 듣게 되고 모든 순간-과거, 현재, 미래-은 늘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의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바꿀 수 있다는 의지로 나아갈 것
백 교사가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 중 하나는 ‘반전(反戰)주의자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은 바로 전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거나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해진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전쟁 후 미국으로 돌아온 주인공 빌리는 다른 아무것에도 관심을 드러내지 않고 또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람들의 죽음을 묘사한 후에는 항상 “뭐 그런 거지(so it goes)”라는 말을 덧붙이며 생활한다. 그리고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을 주소서.”라고 쓴 액자를 걸어두고 세상이 자행하는 전쟁은 인간이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죽음이기에 바꿀 수 없다는 체념의 태도를 보인다.
소설은 빌리의 생활을 통해 그렇게 한 인간을 전쟁의 광기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그 자체가 가장 큰 반전(反戰)임을 보여주며, 폭격의 경험으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저항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된 주인공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트랄파마도어의 외계인이 빌리에게 하는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를 이야기한다”는 말을 통해 지구상의 전쟁을 인간이 자유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책을 읽으며 전쟁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하기보다는 바꿀 수 있다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지향점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트랄파마도어인들이 빌리에게 해준 ‘전쟁과 폭력의 기억으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지만 인생의 행복한 순간에 집중하라고, 불행한 순간은 무시하라고, 예쁜 것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그러면 행복한 순간은 영원한 시간이 되어 그냥 흐르지 않고 그곳에서 멈출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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