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동구 정발산동 보냇길 골목을 거닐다 보면 파란 대문 집 하나가 눈에 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탁 트인 오픈 키친과 유럽풍 인테리어가 먼저 시선을 끄는데 프랑스 전문 요리점 ’르쁠라‘다. ‘르쁠라’는 캐주얼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프랑스 폴 보퀴즈(Institute Paul Bocuse)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박준일씨는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몇 해 전 한국에 돌아와 자신만의 작은 레스토랑을 열었다.
엄마의 주방에서 나오는 소박한 요리
‘르쁠라’ 주방은 오픈 공간이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주방을 향한다. 아일랜드 위에 널려 있는 각종 냄비와 트레이. 그 안에 담겨있는 소스와 요리들이 그릇에 옮겨 지고. 덩치 큰 남자 쉐프들이 여럿이 움직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부산스러움은 뭐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서빙한 음식을 한 입 먹고 나면 이내 주방에 대한 인식이 스르르 전환된다. ‘르쁠라’의 주방은 명절을 맞아 음식을 장만하는 엄마의 부엌을 연상케 한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귀한 가족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던 엄마의 주방. 오직 자식 먹일 음식에 온 정성을 쏟는 엄마의 음식은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켜 본 적이 없다.
‘르쁠라’의 요리는 프랑스 가정식이다. 프랑스 가정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조차 ‘프랑스 가정식은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고의 요리학교 그리고 미슐랭서 인턴
’르쁠라’의 주인인 쉐프 박준일씨. 그의 요리는 집밥처럼 소박하지만 그의 경력은 절대 소박하지 않다. 그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 학교 폴 보퀴즈 출신이다. 정확히 그는 8년 전인 2011년 프랑스에 첫 발을 내딛었다. 박 쉐프가 처음부터 요리사를 꿈 꾸었던 것은 아니다.
“건축가가 꿈이었어요. 건축을 배우러 어학 연수를 갔는데 혼자 지내다 보니 안 하던 요리를 하게 되었죠. 그런데 요리를 하는 일이 너무 즐겁고 주변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하는 거예요. 원래 목표가 건축가여서 요리 공부로의 전향은 꿈도 안 꾸었는데 요리하면 프랑스 요리가 아닌가. ‘최고의 나라에서 배우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에 폴 보퀴즈에 입학원서를 냈죠.”
폴 보퀴즈는 실습과 이론은 물론 경영까지 한 마디로 말해 최고의 오너 쉐프를 키우는 학교이다. “수업이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됩니다. 재학 중 미슐랭 2, 3스타 식당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데 최고의 쉐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죠. 지금 운영하는 이 식당을 오픈할 때도 경영에 큰 도움을 받았죠.”
바쁜 학교와 인턴 생활 중에도 틈만 나면 근처 마켓에 가 장을 보는 할머니들에게 질문 공세를 퍼 부으면서 엄마들의 손맛 비결을 배워 나갔다. “어떤 날은 시장에서 4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궁금한 재료, 가정에서 사용하는 요리 와인 종류까지 꼼꼼하게 묻고 또 물었죠.”
프랑스에서 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올 때 즈음 그의 실력과 성실함을 알아 본 호텔 르 므리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학교를 다니면서 인턴을 하면서 저는 늘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이 프랑스 요리를 쉽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될까 고민을 했죠. 모든 과정을 마치고 미련없이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테스트 차원에서 합정역에 팝업 식당을 열었죠.”
프랑스 요리 부담없이 즐겼으면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두 달 정도 운영하던 팝업식당을 접고 2016년 10월에 자신이 살고 있는 일산에 ‘르쁠라’를 열었다.
“프랑스 요리라 하면 왠지 거리감을 느끼죠 프랑스 요리라고 모두 코스로 나오는 것은 아닌데 저희가 표방하는 것은 집밥 같은 한끼 식사로서의 부담 없는 프랑스 요리입니다. 프렌치 전통요리를 베이스로 하지만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그릇에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그의 말을 빌자면 프랑스 요리는 소스와 육수 만들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기본이 충실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재료 선택도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 까다롭기 그지 없지만 ‘르쁠라’를 찾은 손님들은 미식의 세계를 누릴 수 있어 즐겁다. 프랑스 요리에 한식을 접목하는 그의 실험과 시도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김유경리포터moraga2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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