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 앞에 명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을까. 얼마 전 성남시 공예명장 선정 결과를 보면서, 과연 명장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장인정신에 대해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남시 공예명장 2호에 선정된 장태연(60세) ㈜법촌공예 대표를 만나보았다.
16세부터 배운 기술 평생 목·칠 분야 공예가로 종사
장 대표는 40년이 넘게 나전칠기와 목·칠 분야 공예가로 종사한 옻칠 전문가다. 옻칠이라고 하면 왠지 한옥에서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 같지만, 장 대표의 공장은 세련된 아파트형 공장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옻칠이란 게 칠하는데 성질이 있어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수 십년을 하다 보니 그 성질을 알겠더라고요. 이게 전문가와 아닌 사람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장 대표의 옻칠은 국내에서 정상급 수준이다. 그 동안 수많은 작업을 해왔고, 수만개의 제품을 판매 해왔다. 그리고 나무 표면에 천연 옻칠을 해 전통적인 공예품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높이조절 장치, 공예품 보관함의 잠금장치 등의 특허도 획득했다.
한편 그가 대표로 있는 법촌은 전통 옻칠의 독보적 기술력을 입힌 나무젓가락부터 그릇, 대나무 스피커, 영국 조니워커의 주문으로 생산한 한글·나전 위스키병 등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한국 공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각종 공예품 대회 입상과 디자인 등록, 전시회 개최, 후학 양성과 기술 전수 등 우리 고유 기법을 보전하고 발전시킨 공로가 크다.
옻칠 안에서 인생의 희로애락 겪어
그의 성공 뒤에는 과연 늘 따듯한 햇빛만이 비췄을까. 아니다. 그의 인생에는 엄청난 굴곡이 있었다고 한다. 임실 골짜기에서 나서 자라고 16세에 상경하여 처음 이 일을 배웠다. 그 당시는 나전칠기가 호황이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전칠기로 만든 장롱, 장식장, 테이블 등을 자주 만날 수 있던 시기다. 특히 자개로 만든 밥상은 좀 산다 싶은 가정의 필수 밥상이었으니 그 기술의 쓰임새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이 간다.
87년에는 처음으로 여수동에 공장을 차렸다. 물조차 나오지 않는 열악한 시설이라 개천에서 물을 길어다 쓰기도 했다고 한다. 얼마 후 산성동에 공장을 이전했는데, 호텔에 납품을 하는 소품류를 인기를 얻으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분당과 일산이 들어서면서는 집집마다 집들이를 하면서 필요한 교자상을 제작·판매하여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 때는 분당 곳곳에 배달을 안 간 곳이 없을 정도에요. 정말 많은 집에서 제가 만든 상을 사용했지요.”
하지만 IMF의 큰 여파는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이 때는 자고나면 재료값이 올라가더라고요. 수금도 제대로 안되고요. 위탁 판매를 맡겼던 곳에서도 어느 날 가보면 문 닫고 잠적한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어요.” 장 대표는 이때 인생에 쓴 고배를 마셨다.
도마에 옻칠을 하여 히트 상품 만들어
이 이후 근 10년간 철저히 바닥으로 내리친 삶, 하지만 결국 그를 다시 일으켜 준건 바로 옻칠이다. “이때부터는 생활용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옻칠이 자연소재인데다 항균 효과도 있어 주부들이 찾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제대로 해보자 생각했지요. 우여곡절 끝에 나무 주걱,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어 생협 I-coop에서 판매를 했어요. 반응이 있었죠. 그 후 주방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바로 도마라고 깨달았고 옻칠을 한 도마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도마는 지금까지 가장 사랑을 받는 제품이다. 옻칠은 발라지는 본체에 깊이 스며드는 성질이 있어 칼질을 해도 도마에 옻의 효능은 살아있기 때문에 곧 히트상품이 됐다고 한다.
“‘쟁이’는 만드는 것만 잘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별도의 홍보 없이도 다 알아서 찾아오는 법이지요”
영국의 위스키 브랜드인 조니 워커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병에 나전칠기를 입혀달라는 것. “자사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는 작업이기에 엄격하게 관리를 하더라고요. 만드는 과정에 일일이 관여를 하고 심지어 버리는 물까지 철저하게 체크를 했어요. 그러더니 결과물을 보고 너무 만족했습니다”
기존의 제품에 콜라보하여 해외 수출까지 하고파
한편, 장 대표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다. “젊은 사람들은 이 기술을 배우려고 안 해요. 이런 일은 환경이 열악하고 경제적으로도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 분야가 쉽게 배울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간다면 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기고 동시에 저의 숙제라 생각합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부푼 꿈도 가지고 있다. 나전칠기를 기성제품과 콜라보 작업을 하고 싶단다. “화장품 케이스나 핸드폰 커버 등 얼마든지 기존 제품과 접목하여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로도 진출하는 것이 저의 최종 꿈이기도 합니다” 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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