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때문에 일을 멈춘 3040여성들이 ‘핸드메이드 공예’란 공통의 관심사로 뭉쳐 ‘내 일’과 ‘우리 동네’를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송파구 예술반상회 회원과 방이동 주민이 그 주인공들이다.
손재주로 뭉친 ‘예술반상회’
캘리그래피, 수채화, 프랑스자수, 목공, 꽃차...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예술반상회’로 한데 뭉쳤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공예를 통해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단절된 ‘경력’을 다시 잇고 싶었다.
우선 방이동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재능을 나누는 품앗이 공예교육부터 시작했다. 손뜨개, 손바느질, 압화, 냅킨아트, 플로리스트... 배움이 지속될수록 할 줄 아는 공예 장르가 늘자 신바람 났다. 2017년 봄, 6명으로 시작한 예술반상회 회원은 현재 25명으로 늘었다.
개개인의 장기를 살려 공예 교육 프로그램을 짜임새 있게 기획해 주부 대상 강의를 시작했다. 입소문 나면서 송파구 초중학교에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 창의체험활동, 방과후수업 강사로 하나 둘 씩 데뷔하거나 아예 공방을 창업하기도 했다. 유치, 초등생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좋아하는 일로 커리어를 개척해 나가자 회원들은 자신감이 붙었다.
#윤미연_ 캘리그라피 작가
아이 넷을 키우며 캘리그래피를 독학했다. 수준급 실력을 갖추자 주변에서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자 아예 방이동에 ‘달란트공방’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캘리그래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예 강좌가 열리고 있다. 예술반상회 회원들이 공방 강사로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덕분이다. 그는 수강생이 실력을 키워 강사로 데뷔해 본인만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동시에 이웃들과 함께 일상의 예술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정재옥_ 인형·프랑스 자수 작가
대학 졸업 후 줄곧 직장생활을 했지만 ‘좋아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평생 한복 짓는 일을 하며 고단하게 산 엄마를 보고 자란 터라 ‘절대로 바느질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운명처럼 퀼트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헝겊인형 만들기, 프랑스자수까지 고루 섭렵했고 서울여성공예창업전 수상 작가가 됐다. 공예작가 야외 마켓에 참여해 직접 만든 작품을 팔면서 상품성을 검증받은 그는 공예로 두 번째 인생을 모색중이다.
#여정민_ 일러스트레이터
젊은 시절 로망이었던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솜씨 좋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다.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은 덕에 이웃들에게 그림 레슨까지 하게 됐다. 뒤늦게 본인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그는 체계적으로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올해 미대에 진학했다. 1년 후 그림동화책 출간을 목표로 열공하는 신예 작가다.
#정민경_ 플로리스트
승무원이었던 그는 네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 주부가 됐고 틈틈이 꽃과 가드닝을 공부했다. 초보 플로리스트는 예술반상회와 인연은 맺은 덕분에 다양한 공예 기술을 익히며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면 실력을 업그레이드 해나가고 있다. 틈틈이 플리마켓에 참여해 돈도 벌며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한혜선 _ 케이크 토퍼·인테리어 소품 작가
인테리어 소품 디자이너였던 그는 예술반상회 덕분에 캘리그래피, 도예, 바리스타, 꽃차까지 다양한 분야를 익히면서 케이크 토퍼 공예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회원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강사로 나가고 짬짬이 석촌호수에서 열리는 야외마켓에도 참여하고 있다.
#송승연 _ 압화·포크아트 작가
공예에 관심이 많아 오래전부터 꾸준히 배우며 실력을 쌓아온 노력파. 회원들과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초중학교 공예 강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이뤘다.
방이동 이색 공예 축제 ‘20미터페스티벌’
예술반상회 회원들은 경력단절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본인이 좋아하는 공예 분야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 즐겁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마을배움터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각급 학교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는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방이동에 공예 골목 만드는 게 공동의 꿈이다.
그 첫걸음으로 회원들끼리 재능을 기부하고 후원금을 모아 뜻이 통하는 동네 상인, 종교단체가 힘을 합쳐 마을축제를 열었다. 9월14일~16일 사흘 동안 열린 ‘20미터 페스티벌’. 방이동 한양3차아파트 정문 옆 골목길은 공예 작품 전시와 체험, 먹거리 장터, 알뜰장이 펼쳐지면서 활기가 돌았다.
‘동네 사람들, 밥 한번 먹읍시다’란 테마의 축제 하이라이트인 비빔밥 잔치에는 28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들며 성황을 이뤘다. 비즈, 목공, 수채화 같은 체험 부스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로 얼굴도 몰랐던 동네사람들끼리 비빔밥 나눠먹고 아이들과 공예 체험하며 ‘이웃’을 경험한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혼자라면 꿈만 꿨을 텐데 작가, 상인, 단체, 지자체까지 힘을 보태니 이렇게 꿈이 이뤄지네요”라고 이번 축제 개최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유임근 KOSTA 국제총무(목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마을축제를 통해 생활 공예의 가능성을 확인한 예술반상회 회원들은 차분히 다음 단계를 모색중이다.
“이웃들에게 공예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생활예술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와 경제적 자립, 지역 사회 재능기부가 선순환을 이루는 사회적경제 모델을 방이동에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예술반상회 허브 역할을 하는 ‘스페이스 휴’ 이형대 대표는 말한다.
생활 공예에 관심 많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송파강동 주민들에게 예술반상회는 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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