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가 되면 엄마들은 분주하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노심초사. 상담 기간에 열 일 제쳐놓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이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 학교에 가는 엄마들이 있다. 매달 첫째 주 화요일, 책 한 권씩 가슴에 안고 콧노래를 부르며 문학소녀로 변신하는 그들은 백석고 시문학동아리 ‘아딧줄’ 회원들이다.
시인 교장 선생님과 문학소녀 학부모가 만든 동아리
‘아딧줄’이란 배에 달린 줄로 바람의 방향을 맞추기 위해 돛에 매어놓은 밧줄을 말한다. 2013년 국어교사 출신 이철훈 교장과 학부모가 뜻을 모아 시문학 동아리를 만들었다.
“교장 선생님이 학부모 시문학동아리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떤지 권하셔서 모이게 되었는데, 처음엔 반대표로 자리 채우러 나온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잠깐 모이다 말겠지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껏 모임이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이들은 졸업했지만, 엄마들은 졸업 안하기로 했답니다.”(정진이씨)
재학생 엄마들뿐만 아니라 졸업생 학부모들도 꾸준히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모임이 건실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자녀가 아닌 엄마 자신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기엔 시(詩) 위주로 자작시 짓기, 시 감상 등을 하다가 지금은 책 토론을 주로 합니다. 책을 미리 읽고 토론하는데 학부모 교양서와 베스트셀러 도서는 피합니다. 엄마의 역할은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나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수다만 떨다 헤어지는 다른 모임과는 달리 책을 통해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끈끈한 사이가 되었죠.”(이정화씨)
책은 회원들이 추천한 서너 권 중 투표를 통해 선정하고 돌아가며 발제를 맡아 자료를 만든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읽어보지 못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것도 모임의 장점으로 꼽는다.
책 읽는 엄마 모습, 아이에게 귀감
백석고 학부모동아리 ‘아딧줄’은 교육청 인문 사회부 동아리로 등록되어 학교예산을 지원받는다. 희망도서 구입과 연말 문집발행, 매년 시문학기행의 경비를 보조받는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련 장소를 탐방하는 문학기행은 아딧줄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황순원 문학관’, ‘파주 지혜의 숲’, ‘이효석 문학관’, ‘열화당 책박물관’, ‘김유정 문학촌’ 등을 다녀왔다.
“작년에는 김유정 작품을 모두 읽고 춘천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왔어요. 작품의 발자취를 직접 쫓다 보니 감동이 배가 되더라고요. 활자로만 접하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살아 숨 쉬는 거 같았어요. 그런 작품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죠.”(김나미씨)
매년 발간되는 글모음집 ‘네잎 클로버’도 자랑할 만하다. 동아리 회원이 직접 그린 작품 표지와 회원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글들이 담겨 있다.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니 자녀들은 자연스레 호기심을 갖는다. 책 읽으라는 백 번의 말보다 엄마가 읽어보니 이 책은 이런 점 때문에 추천한다는 말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제가 먼저 책을 읽고 아이에게 추천할 수 있어 좋아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의 책을 추천하며 아이와 책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박미영씨)
문학 작품 함께 읽고 나눌 신입회원 모집 중
신학기가 시작되면 아딧줄 회원들은 신입회원을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많은 엄마들이 저희와 함께하면 좋겠어요. 책을 읽고 토론한다니 부담스러워 하시는데 절대 어려운 책을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늘 책을 가까이하고 편독하지 않게 되어 좋아요. 또 같은 책을 읽고도 다양한 의견을 나누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죠.”(송미란씨)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이라 선배 학부모들의 입시에 대한 알짜정보를 들을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이미 대학진학을 경험한 선배 엄마들에게 듣는 꿀팁이 많습니다. 입시가 다양해지다 보니 그런 정보들이 참 유용합니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고급정보도 얻고 입시의 고단함도 위로받고, 이만한 모임이 또 있을까요.”(조은영씨)
문학 작품을 읽으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성장을 꿈꾸는 아딧줄 멤버들의 소통은 오늘도 계속된다. 매달 첫째 주 화요일, 10시 30분 백석고 1층 학부모운영회의실에서 신입회원을 기다린다.
<미니 인터뷰>
김나미 회장
아이 입학과 함께 아딧줄의 멤버가 되었어요. 평소에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 토론 이외에도 얻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삶의 시각이 바뀌는 변화를 경험했답니다.
총무 조은연씨
아딧줄 동아리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책 토론 후 나눔 시간에 주고받는 학교 소식과 진학 정보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가 받은 만큼 신입회원들에게 베풀고 싶어요.
정진이씨(전 초대회장)
첫해 회장을 맡으면서 모임이 정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했죠. 아이를 매개로 만나는 모임이 오래가지 않는 것과는 달리 아딧줄은 엄마 중심의 모임이라서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송미란씨(졸업생 어머니)
제 소원은 이 모임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유지되는 거예요. 그 만큼 모임에 대한 애착이 크지요. 책을 통해 여러 의견을 듣다보니 시야도 넓어지고 자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집니다.
김혜영 리포터 besycy@naver.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