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민족의 명절 ‘설날’이 다가온다. 설날은 농사를 근본으로 살아온 우리민족의 신년제로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적인 민족의 대축제였다. 음력 기준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우리 민족은 한 민족임이며 생활공동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날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민족문화말살정책의 하나로 양력설을 ‘신정’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설날을 ‘구정’이라 이름짓고 민족문화를 탄압했다. 우리가 요즘에도 흔히 사용하는 ‘구정’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등장했다.
그러나 8.15 광복 이후에도 걷잡을 수 없이 밀어닥친 서구화와 세계화 바람 앞에 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은 일제 때와 똑같이 억제되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공휴일 지정이었다. 신정은 3일씩 설날 연휴를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장려한 반면 여전히 설날을 구정이라 부르며 민족적 자긍심을 갉아먹어왔다. 하지만 위대한 우리 민족은 설날을 끈질기게 지켜왔다. 전통문화에 뿌리를 박은 민심은 그 끈기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양력설을 강조하는 정책에도 설(음력설)을 쇠는 숫자는 크게 감소하지 않고 설날의 전통을 이어왔던 것이다.
이렇게 지켜온 전통이 다시 한 번 흔들린 적이 있었다. 바로 1998년 IMF 무렵이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설을 두 번 쇠는 현실과 IMF 경제 상황에서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의견에 따라 당시 ‘민속의 날’로 불리던 설날을 폐지하고 신정으로 통합 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여기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찬성하는 칼럼을 발표하며 신정을 중심으로 단일과세로 여론이 기울어져갔다.
수천년 이어온 설날,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을 이겨낸 설날이 사라질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바로 그 무렵 1998년12월23일 전국 문화원연합회 총회가 세종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렸다. 당시 필자는 전국문화원 연합회 감사로 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단일과세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신정 휴일을 2일에서 1일로 줄이고 민속의 날을 3일로 늘려서 ‘설’로 개정 수 천년 우리 역사 속 설날을 계승해 나갈 것을 요구했다. 당일 참석한 문화원장들이 건의문에 연명하고 청와대에 건의하기로 가결했다. 다행히 우리의 요구는 받아들여져 ‘구정’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 대신 ‘설’이 공식명칭으로 사용 중이다.
‘설’ 짧은 단어지만 그 단어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문화의 세기 민족의 얼이 담긴 단어를 지켜갈 수 있어야 우리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유천형 전 안산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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