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은 ‘무언의 약속’이다. 물건을 사러간다고 하지 않고 ‘장 보러 간다’고 표현한 것은 장날 볼 것이 많고 또 익숙한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인 안산 시민시장도 2월 10일과 15일 어김없이 5일장이 선다. 올 설에는 시민시장에 들러 근처 전통시장인 라성시장까지 가보면 어떨까?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음식에 덤과 정, 게다가 시간을 빗겨간 전통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직접 만든 만두피 ·옛날 과자 ·천원막걸리
시민시장에 들어서자 달콤한 냄새와 뻥튀기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옛날과자를 만드는 시민제과다. 쌀과 여러 잡곡을 이용해 만든 강냉이와 뻥튀기 각종과자가 가게 안으로 가득하다.
주인장 이병헌 씨는 “방부제 하나 없이 순수하게 만든다. 20여년 찹쌀로 한과를 만들어 명절에 판매해왔고 아직은 단골이 많아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지만, 올 명절대목 보기는 조금 어려울 듯하다”며 연신 달력을 보았다. 13일 도일시장, 14일 모란시장, 그리고 15일 시민시장 명절이 임박해 매출을 올리기 ?아쉽기 다는 것이다.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만두를 빚으면 이미 설 잔치 분위기는 끝. 여기서 포인트는 만두피이다. 시민시장에서 20여 년째 국수와 만두피를 만들고 있는 대풍국수. 이곳은 입소문을 타고 아름아름 찾아오는 오래된 단골이 많다. 특히 명절이 되면 쫄깃하고 터지지 않는 만두피를 사러 일부러 찾아온다. 대·중·소로 준비된 만두피는 만원이면 200장 정도를 살 수 있다. 왕만두를 빚으려 큰 만두피를 샀더니 주인장은 “좋은 밀가루로 만들었으니 5일 안에 만들어 맛있게 먹으라”고 조언했다.
시민시장의 ‘천원막걸리’는 서민의 마음을 참 잘 안다. 막걸리 값만 내면 따끈한 두부와 여러 안주는 공짜다.
이곳에서 사야 속이 편해
각종 전과 삼색나물, 그리고 김치와 밑반찬이 넉넉한 라성시장은 단골이 많은 전통시장이다. 채소를 파는 현대농산 주인은 단골마다 김치 담는 성향까지 알 정도이다. 김치 양에 맞도록 마늘과 생강을 그 자리에서 갈아주니 주부들은 김치담기가 한결 편해진다.
리포터가 라성시장에서 꼭 권하고 싶은 것은 흙이 잔뜩 묻은 뿌리채소다. 토란과 연근 그리고 도라지는 국내산과 중국산이 구분되어 믿고 살 수 있다. 주인장은 “고기만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채소도 등급이 있어 좋은 채소를 갖다 판다”며 “믿음은 오래된 단골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생선가게에서 직접 떠 주는 동태 포 그리고 홍어와 조기찜. 고기전의 수육도 인기가 좋다.
라성시장 입구에 있는 단원족발은 매우 추운 날씨에도 여전히 줄이 길었다. 족발을 사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자주 찾는 단골들이라 기다리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표정이다.
이곳 주인장 부부는 말 한마디 없이 족발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조리사 자격증 여러 개를 걸고 그저 맛으로 말하겠다는 주인부부의 표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노상에 앉은 어르신들이 깔끔하게 다듬은 나물과 채소 그리고 갓 까놓은 싱싱한 조갯살도 전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다. 라성 방앗간에 들러 갓 볶은 참깨 한 봉지를 만원에 샀다. 들기름을 짜던 어르신은 젊은이들이 대형마트로 몰리고, 외국인들이 점점 더 많이 찾는 재래시장의 현실이 안타깝단다.
“난 여기 와야 마음이 편해. 불편하긴 해도 재료가 좋으니까. 그리고 값에 비해 양도 넉넉히 주지. 멀리서 찾아오는 마음을 알아주고 반갑게 맞아주니 믿음이 가지. 정이 곧 덤인데 젊은이들이 그걸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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