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최근 객관이라는 공정함이 있는 수능중심 체제로 회귀하자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이웃한 일본이 2020년도부터 우리나라 수능에 해당하는 객관식 평가방식의 센터시험을 폐지하는 교육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도 우리 못지않은 학벌 중시 사회이고, 평가의 객관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본을 변화로 미는 힘은 4차 산업혁명의 압력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중 하나인 인공지능의 등장에 맞서 인간의 영역을 지키려면, 혼란이 있더라도 평가방식을 바꾸고 거기에 걸맞은 교육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문부성의 입장이다. 그 변화 앞에 놓인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장면 둘. 지난 9월부터 최근까지 중계동 지역에서 고교진학설명회가 문전성시였다. 학종이 전면화되며 그 어느 때보다 고교선택의 문제에 신중해진 것이다. 고교별 진학실적을 따져보기도 하고, 어떤 고교에 가야 좀 더 내신 취득이 용이한지, 어느 학교의 비교과 프로그램이 우수한지를 꼼꼼하게 비교해보며, 어느 공간에서 내 가능성이 극대화 될 수 있는가 하는 전략적인 판단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장면 셋. 최근까지 출신 고교에서 취득한 학생의 내신 수준으로 학종 1단계 합격 가능성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투박하게 말하면 이전의 학종은 같은 값인가를 따지고, 그 다음 다홍치마를 찾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2018학년도 대학별 1단계 합격자들의 내신 스펙트럼이 이전년도에 비해 뚜렷하게 넓어지는 양상이다. 동일고교에서 동일한 상위권 대학 학과에 지원한 두 학생 가운데, 오히려 내신이 2등급 가량 낮은 학생이 1단계를 합격하는 사례들이 빈번해졌다. 바꿔 말하면, 대학들이 이제 내신에 덜 기대고도 세특과 수상, 창체활동과 독서를 연결하는 입체적 횡단평가 방식으로, 충분히 원하는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자면 모든 것은 변한다. (Everything changes) 그것도 아주 빠르게. 학종의 확대는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이고, 대학은 활동에서 디테일을 보며 확인 면접 질문도 한층 날카롭게 벼렸다. 변화를 보면서도 기존의 관성을 답습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이제 어떤 고교에 들어가거나, 특정 영재반에 소속되어 마냥 열심히 참여하면, 학생부가 채워지고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환상을 거둬야 한다. 왜냐면 학교는 하나의 무대이고 장이지, 제작 기획 연출까지 전일적으로 해결해주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무대 위에 어떤 공연을 올릴지는 내 몫이다. 가뜩이나 고달픈 학생들에게 무엇을 또 얹자는 것은 아니다. 기왕 하고 있는 그것을 ‘잠깐, 멈춰서, 생각’을 해보고 하자는 것이다.
가장 익숙하고 대중적 활동인 ‘봉사’를 통해 잠깐 멈춰서 생각할 것을 살펴보자. 최근에 만나게 된 예비 고1 학생들에게 개인 봉사활동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모두 손을 들었다. ‘왜 거기서’ 봉사활동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또,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면 ‘뿌듯했다’라는 네 글자 외에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이 난감함을 고 3때 자기소개서의 ‘배우고 느낀 점’ 항목을 기술하며 다시 만나게 된다. 과거엔 내신 뒤에 살짝 숨을 수도 있었지만, 이제 그 생각의 빈자리는 나중에 치명적인 공백이 된다. 큰 고민 없이 행위에만 참여했을 경우 1차적으로 자기소개서에 담을 내용이 없고, 면접 때 답할 내용이 없다. 고생스럽게 무언가 실행은 했지만 거기에는 인간적인 성장도, 입시에서의 기술적인 장점도 없는 것이다.
실컷 위협을 늘어놓았으니 이제 대안을 생각해보자. 모든 활동은 다음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 것이 좋고, 또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최초의 계기(trigger)에서 어떤 목표(target)를 갖게 되고 그 목표나 목적을 실현할 계획(plan)을 구상하고 이를 실행(action)에 옮기고, 이를 최초의 목표에 비추어 평가(evaluation)하는 흐름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것을 ‘프로젝트 활동’의 한 사이클이라 할 수 있다. 소논문, 경시대회 참여, 독서, 혹은 내신 상승을 목표로 한 학습까지 모두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프로젝트는 목표와 기한이 있고, 달성할 방법이 있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또한 이 한 사이클은 그대로 자기소개서 작성의 원칙이기도 하며, 또한 이 다섯 단계를 거치는 ‘프로젝트 활동’은 학생의 고등 사고역량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하다. 이는 다음 지면에 담기로 한다.
학생들이 할 일은 끝없는 실행만 반복하며 자신을 혹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호모 프로젝티쿠스의 본성을 일깨워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런 3년의 누적이 곧 대입이다.
생각의좌표학원
양해성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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