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_ 주부들 악기에 도전하다]

한 곡이라도 제대로·즐겁게… 삶의 활력 찾다

송정순 리포터 2017-12-15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에 자기 시간을 찾지 못했던 주부들이 ‘악기’를 통해 삶의 활력소를 찾아 나섰다. 늦은 나이에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주부들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삶의 활력이 됐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듯 악보 보는 방법을 배우고 어느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연습에 매진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주부들을 만났다.


“마음 허전할 때 새로운 거 배우고 싶어요”
피아노_ 김진아씨

초등학교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피아노를 배웠다는 김진아씨, 체르니 30번까지 쳤어도 아쉬움이 남아 작년 가을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씩 코드 반주법, 찬송가 등을 배워요. 집에 피아노가 있어서 혼자 악보 보고 연주하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악기는 배우고 싶은데 새로운 것 시작하느니 익숙한 악기가 나을 것 같아 다시 도전하게 됐습니다.”
막 시작했을 때는 매일 한 번이라도 건반을 두드리려고 노력했지만, 어느덧 1년이 넘어가니 조금은 연습에 게을러졌다. 피아노 안 친다고 잔소리들을 일도, 레슨에 빠진다고 야단맞을 일이 없어도 빠짐없이 레슨을 받고 연습하면서 교회 모임에서 반주 정도는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또 하나, 피아노를 치면서 중2 아들과 소통하는 기회도 생겼다. “연습하고 있으면 아들이 듣고 있다 그렇게 치는 게 아니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그러면서 가르쳐주기도 하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손가락이 마음만큼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느릿느릿 연주한다. 이게 음악인지 그냥 두드림인지 구분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어느덧 한 곡이 완성된다. 이럴 때 ‘연습하면 되는구나’ 생각이 든다.
“잘 치면 기분이 좋죠. 왠지 마음이 허전해질 때 뭘 좀 배워보고 싶은데 엄마들과 수다 떠는 것보다는 새로운 거 배워보고 싶어요. 올해는 도예와 라인댄스도 배우는 기회가 됐습니다.”


“두드리면 즐거운 젬베 딸과 함께 배워요”
젬베_ 김미예씨

초등학교 2학년 딸을 가르치려다가 함께 악기를 배우게 됐다는 김미예씨,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씩 젬베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딸을 가르치려고 갔다가 악기가 커서 연주할 때 잡아줬어요. 손의 위치와 두드리는 세기에 따라 소리도 달라지고 무엇보다 리듬감이 있어 듣기만 해도 즐겁더라고요. 그걸 보시고 원장님이 함께 배우라고 권해서 등록했습니다.”
젬베는 일상적으로 접하기 쉬운 악기는 아니다. 미예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두드리면서 해소할 수 있고, 듣기만 해도 리듬이 신나는 타악기를 찾다 젬베를 알게 됐다. 타악기인 젬베는 아프리카에서 축하연과 제식에 사용하는 큰 성배 모양의 북으로 손으로 두드려 리듬을 맞추는데 사용한다.
영화에서 보듯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쉽게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젬베를 선택했지만, 막상 악기를 배우다 보니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었다. 오른손과 왼손을 따로 사용해 박자를 맞춰야 하는데 오른손잡이라 어느새 오른손이 먼저 나가버리기 일쑤. 그러할지라도 박자를 맞추다 보면 어느새 흥겨움에 넘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또한 탁탁 치면서 리듬을 타다 보면 어느새 직장생활,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등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좀 더 연주를 잘 하면 스트레스가 더 잘 날아갈 거 같은데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즐기면서 연습하면 거리 공연도 하고 기타를 치는 아들과 화음을 맞출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에요”
가야금_ 오지연씨

가야금을 시작한지 반년, 고등학교 국악 시간에 연주해본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 신정2동 주민자치센터 가야금·병창 교실에 등록했다.
“국악 시범 초등학교에 다녀서 그런지 국악에 관심이 많아요.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집 가까이서 가야금을 배울 수 있어 등록했습니다.”
가야금, 해금, 아쟁 등 여러 국악기 중에서도 소리의 깊음과 울림에 반해 선택하게 된 가야금, 12줄에서 그렇게 많은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릴 때 피아노를 쳤었는데 피아노는 건반이 많잖아요. 건반마다 소리를 내니 소리가 풍부해요. 하지만 가야금은 12현밖에 되지 않는데 나무의 울림과 줄의 울림을 통해 나오는 풍부한 음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가야금을 시작하면서 악기도 구입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하면 할수록 실력 느는 게 보여 매일 연습 삼매경에 빠진다. 지연씨가 연습할 때마다 7살 딸은 자신도 하고 싶다고 악기를 만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방과 후 수업으로 가야금을 가르칠 생각이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화음도 맞추고 싶다.
가족들의 응원도 대단하다. 남편도 악기를 배우는 지연씨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한 곡 뽑아보라’ 권한다. 그러면 ‘아리랑’ ‘오나라 오나라~’를 근사하게 뽑아내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한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는데 가야금을 배우며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됐고 공연도 대회도 봉사도 참여하고 싶어요.”


“나이 들어도 평생 취미로 연주하고 싶어요”
클래식 기타_ 김영현씨

클래식 기타 소리의 매력에 빠져 20년 전에 기타를 사뒀다. 하지만 직장이며 육아며 바쁜 일상으로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조차 하지 못 했던 김영현씨, 직장도 관두고 아이도 크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생기자 3년 전부터 목동청소년수련관에서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 기타는 포크 기타와 달리 소리가 부드럽고 손으로 뜯어서 선율을 느끼는 매력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이제야 배움의 길로 접어든 거죠.”
어릴 때 엄마의 손에 이끌리어 배우던 피아노와 달리 스스로 배움을 선택한 기타는 애정이 갔다. 성인이 돼서 다시 도전해봤던 피아노는 이미 굳어진 손가락으로 인해 한계가 느껴졌고 소리도 커서 아무 때나 연주하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기타는 은은한 소리와 쉽게 어디서나 들고 다닐 수도 있어 영현씨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미 연습을 했음에도 빨리빨리 기억나지 않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고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감각도 무뎌진다. 하지만 악기를 연주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문한지 3년이 지났지만, 매일 연습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할 필요가 없는데도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소리가 잘 안 되다가 어느 순간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 기분도 좋고 하면 되는구나 만족감도 생깁니다. 나이가 들어도 혼자서도 연주라는 것을 할 수 있으니 평생 취미로 연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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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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