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출간된 장인수 시집 <적멸에 앉다>는 꾸밈없는 언어로 일상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담아내고 있다. 시집 제목인 ‘적멸(寂滅)’은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해 평온하게 된 열반의 상태’를 의미한다. 시집 제목처럼 ‘적멸에 스민 능청과 해학의 언어’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장인수 시집 <적멸에 앉다>
출판사 문학세계사
아버지, 울 아버지
첫 장 ‘시인의 말’ 속에 ‘~아버지 말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라는 표현처럼 고향을 배경으로 한 아버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표현도 정감 어리다. <친구> 속 ‘울 아버지’란 단어는 그의 마음속에 담긴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시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감내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와 맞물려 더 애잔하다. 특히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는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고, 비가 쏟아지며 주룩주룩 장문의 편지를 쓴다’는 말로 못 다한 ‘효도’에 대한 자식의 속죄를 담고 있다.
아버지는 늘 바보처럼 웃는다.
아버지의 몸은 온통 풀 냄새와 소똥 냄새로 가득했지만
그 비릿한 냄새 사이로 수천 가지의 향긋한 향내 분자를 풍긴다.
<아버지의 냄새> 중에서
아내, 울 아내
아내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중년 부부의 모습을 민낯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무심한 듯 담담하게 내뱉는 시어 속에 묵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함께 잡니다>는 ‘부부 사이에 대화도 끊어졌다’는 씁쓸한 고백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남은 인생도 평생 한 이불을 써야 한다’며 ‘맨몸, 손잡고 맨발, 포개며 잠을 잔다’고 속내를 털어 놓는다.
식탁에 놓은 아내의 약봉지를 보다가 (중략)
아내의 손길이 닿던 곳을 내 손길이 훑어갑니다.
이마를 짚어 주던 손길은 아직 내 마음 속에 깊이 살아 있습니다.
마음보다 앞서서 손이 집안일을 찾고 있습니다.
아내의 이마를 짚어 줍니다.
<손길> 중에서
가족, 울 가족
장인수 시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 가족은 미쳤습니다>는 이 질문에 대한 유쾌한 해답이다. ‘아내와 아들이 절규하며 온갖 핀잔을 주지만’ 나이 오십 넘어 걸그룹 춤을 흉내 내는 아버지. 시인은 그런 아버지, 남편의 모습으로 가족과 함께 한다.
지금은 여름 휴가 여기는 묵호항 모래사장입니다. (중략)
고딩 아들과 아빠와 아내가 동해 바다를 향해 실성을 한 듯
광란의 춤을 춥니다. 우리 가족은 미쳤습니다.
<우리 가족은 미쳤습니다> 중에서
■ 시인 장인수는?
2003년 <시인세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 소리 질러>가 있고, 교양서로 <창의적 질문법>이 있다. 현재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중산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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