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학생이 돼서 처음 장애인을 봤어요. 그때는 치맛자락이 그 장애인에게 닿지 않게 하려고 몸을 피했죠. 그런데 제게 지적 장애를 가진 동환이가 태어났습니다. 장애인은 미지의 세계에서 온 괴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 장애아를 키우는 가정 역시 특별한 집단이 아니라 ‘당신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웃’이라는 것. 자폐아인 제 아들의 일상을 담은 제 글을 통해 비장애인들의 편견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ttp://www.thefirstmedia.net ‘동네 바보형’ 연재중인 9살 동환이 엄마 류승연씨 글 중에서)
류승연씨의 말처럼 편견은 무지와 경험부족에서 비롯된다. 장애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편견은 두려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른 것’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보다는 ’거부‘를 택하는 것이다. 류씨처럼 편견의 벽을 깨트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수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엄마들 정책을 제안하다!
사상 유례 없던 폭염이 전국을 집어삼키던 지난 여름. 고양시청 1층 로비에는 십 여 명의 어머니들이 무더위와 싸워가며 며칠째 밤샘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 쪽잠을 자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녀들의 모습은 누구보다 결의에 차있었다. 이들은 바로 발달장애 아이를 자녀로 두고 있는 부모들의 모임인 ’새누리장애인부모연대 고양지부‘(이하 부모연대) 소속 엄마들이다.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는 플랭카드 문구처럼 그들의 요구는 절박했다. 엄마들은 ’기존의 보호, 돌봄 차원 서비스에 활동 서비스까지 추가로 지원,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도모할 것‘ 등 모두 8개의 정책을 고양시에 제안했다. 이 자리에는 부모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함께했는데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일 밤샘농성을 시작한 지 17일 만에 시측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내년 예산에 적극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
학교 졸업 후 90%가 ’나 홀로 집에’
“발달장애인은 대뇌 손상으로 지능 및 운동, 언어 발달 등에 장애가 발생한 친구들을 일컫죠.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등이 그에 속하는데 장애인시설에 계신 분들의 70%가 바로 발달장애인입니다. 저희들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인데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수용‘과 ’관리‘의 대상이 아닌 ’독립적 인간‘으로 존중, 이에 맞는 정책 집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부모연대 김경자 회장은 이 같이 강조한다. 지난 2003년 특수학급부모회라는 이름으로 시작, 2009년 부모연대고양지부라는 정식 단체로 이름을 갖추기 까지 벌써 13년째 활동 중인 부모연대는 몇 년째 발달장애 성인 권리 보호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해왔다. “교육부분에 있어서는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죠. 10여년 전만해도 학교 측의 반대로 아이들 보낼 학교가 동네에 없었어요. 지금은 당사자가 요구할 경우 무조건 특수학급을 설치토록 법으로 보장돼 고양지역 상당수 학교에 특수학급이 운영되고 있죠”라며 “문제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대략 90%의 아이들이 졸업 후 집에서 지내죠.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라고 말하는 김 회장. 부모연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설치가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보호의 대상이 아닌 자립의 주체로”
현재 고양시에는 약 3,700여명의 발달장애인이 있다. 하지만 현 시스템으로는 절대 다수가 직업 훈련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김회장은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 영위, 자기 결정권 증진, 사회 참여 기회 확대야말로 저희들의 꿈입니다. 센터 설립은 그 첫 걸음이죠”라고 말한다. 창원시의 경우 오래전부터 자조단체(장애인이 스스로 운영하는 단체)를 발굴, 지원하고 있는데 장애인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보호’와 ‘돌봄’ 중심의 정책을 ‘자립’과 ‘교육’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창원시의 경우 자조단체가 생기면서 많은 장애인들이 보호 기관에서 자조 단체로 발길을 옮긴다고 하네요. 주간보호센터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장애인 자립효과는 물론 예산 절감 효과도 발생했고요”
장애를 위한 1,000명의 목소리!
밤샘농성이 이어지던 지난 여름. 시청을 찾아와 격려와 힘을 보탰던 사람들은 모두 1,000여명. 물론 이들 대부분은 발달장애인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었다. 김회장은 ”처음엔 십 여 명으로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참여를 이뤄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고양시민으로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지요“라고 말한다. ”그동안 자식이 장애인인 사실을 숨겨왔던 엄마가 이번 일을 계기로 용기를 얻어 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고 하네요. 내 아이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오는 부모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어린 아이들이죠
장애인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위해 하루 하루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엄마들. 하지만 그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 없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자폐아 엄마 류승연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갔는데 아이가 소리를 치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자폐의 특징인데 아들을 쳐다보는 눈길때문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요. 혹시 이런 상황을 목격하시면 부모가 훈육을 할 시간을 갖도록 잠시만 너그럽게 외면해 주십시오. 언젠가는 아이도 배움을 통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유경 리포터 moraga2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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