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생들 정말 학교생활이 바빠요. 15여 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죠. 옛날엔 수시라 하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교과로 대학에 가는 것으로만 생각해 공부만 열심히 하고 수행평가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절반 정도는 학업에,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 찾아할 수 있는 교과외 활동에 집중해야 하죠. 동아리도 상설동아리 뿐 아니라 자율동아리까지 활성화되어 스스로 연구하고 체험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 노력합니다.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 크겠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하는 모습이 좀 더 긍정적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에 가이드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김태화(32·생명과학) 교사를 만났다.
독서, 꾸준함과 연계활동 중요
그가 강조하는 첫 번째 활동은 독서다.
생활기록부 독서활동에 도서제목과 저자만 작성하게 되면서 학생들의 의미 있는 독서활동이 줄고 있다는 분위기 속, 그는 소신 있는 독서와 함께 다양한 연계활동을 강조한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지혜의 계단’. 한영고 1학년 교실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점심시간이나 방과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독서를 통해 자신의 지혜를 한 계단식 올라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은 도서관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공간으로 책을 대여할 수 없고, 이곳에 소장된 도서를 이 공간에서만 읽을 수 있다. 현재 수행평가 관련도서와 필독서 위주 200여권이 비치되어 있다.
김 교사는 “올해 2년차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미 체계가 잘 잡혀서 2학년이 된 학생들도 여전히 많이 찾고 있다”며 “이곳에서의 독서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나 관심 분야를 자연스럽게 찾아가고, 자신이 흥미 있는 부분에 대해 전문적인 책을 찾아 심도 있는 독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김 교사. 하지만 활동과 운영은 철저하게 학생들에게 맡긴다. 지혜의 계단 멘토 학생들이 이 공간에 상주하면서 다른 학생들의 책 선정이나 활동에 대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독서활동과 함께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은 수상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들과 멘토들은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에도 그 내용이 기재된다.
독서와 관련된 다양한 연계활동 또한 진행된다. 여러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은 ‘이래그래독서토론’. ‘지혜의 계단’이 학생들이 책을 읽을 기회를 제공한다면, ‘이래그래독서토론’은 독서활동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는 활동. 지정도서 2권을 읽은 후 전문가의 관련 강연 2회를 듣고, 토론과 발표로 마무리하게 된다.
관심분야 스스로 찾아 연구하는 힘
김 교사는 학생들의 연구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는 활동인 또래세미나는 한영고의 차별화된 활동으로 김 교사는 자연과학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수업개선을 위해 만든 수업연구공동체가 있는데 또래세미나는 바로 그 한영학습플랫폼에서 나온 프로그램이에요. 한영학습플랫폼은 크게 R&E와 visual thinking으로 구성됩니다. 학생들이 R&E에 대한 부담이 크니까 학교 안에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수업시간이나 방과후 시간에 스스로 할 수 있게 시간을 제공하고 교사들이 조언을 해주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또 visual thinking을 통해 수업 내 자신들이 학습한 내용들을 창의적으로 표현(그림, 마인드맵 등)하는 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래세미나는 인문사회와 자연과학으로 나눠서 운영되고 있다.
김 교사는 “자연과학 분야 또래세미나 참여 학생들은 대부분 물·화·생·지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연구내용을 보면 주제가 한 분야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융합적으로 선택해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3월부터 6월 말까지 수업을 진행해 주제선정부터 연구, 소논문 작성, PPT발표까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이런 활동은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갖는 기회. 또, 대학 진학 후나 사회에 나가서 결국은 해야 하는 활동들을 미리 경험해보는 기회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또한 팀 활동을 통해 협동이나 배려 등 사회생활을 미리 겪어보면서 또 한 번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주제를 정하고 연구, 소논문을 쓰는 모든 과정에서 단지 안내자 역할만을 담당한다. 많은 대화를 통해 주제선정을 조언하고, 고등학교 수준에 맞는 구체적인 연구의 방향과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것. 일단 연구가 시작되면 학생들의 자기주도활동이 빛을 발하게 된다.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사의 힘
올해로 교사생활 9년차로 접어든 김 교사. 고1때부터 그의 꿈은 단 하나, 교사였다. 그가 그 꿈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들 덕분이다.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웠는데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그걸 알고 여러모로 잘 챙겨주셨어요. 그 덕분에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죠. 또, 고등학교 때 방황을 많이 하던 친구들이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방향을 잘 잡아가는 걸 보고 교사란 직업이 정말 매력적이라 느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못했는데, 교사가 된 후 오히려 그런 고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아요.”
교사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가 묻는 2가지 질문이 있다.
“왜 교사가 되고 싶은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그가 고등학교 때 막연히 생각한 교사의 모습은 ‘통찰력을 갖고 학생들을 옳은 길로 이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는 교사’였다. 하지만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교과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함을 느낀다는 김 교사다.
과목에 대한 질문을 건네 오는 학생들에게 그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생명과학은 암기가 필요한 과목이지만 생명과학 단원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과목이다. 전체적으로 생명과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암기는 부차적인 문제, 무작정 외우려는 자세를 버려라”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나는 ‘선생님의 그 말’
내년이면 10년차가 되는 김 교사. 스스로 교사로서의 첫 10년은 시행착오의 시기가 말한다. 교사로서의 첫걸음을 떼는 시기. 이런저런 시도로 많이 해본 그다.
다음 10년은 이런 시도들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전문성에는 교과에 대한 전문성, 담임교사로서의 전문성, 생활지도에 대한 전문성 모두가 포함된다.
다음은 “이 모든 것이 갖춰진 성숙한 교사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찾아와 하는 말들 중 가장 고마운 말은 ‘시간이 지나도 선생님 말이 생각나고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알겠더라’는 말이에요. 고등학교 1년, 2년을 겪고 지나가는 선생님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돌이켜봤을 때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기억나는 교사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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