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영국풍2000학원 고등논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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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여기서 왜 따뜻함이 느껴져요?”
“기본적으로 타향에서 고향사람을 만나서 진료 받으면 따뜻하고 정겹지 않겠어?”
“돈 받고 해주는 건데 왜 따뜻해요?”
얼마 전 국어과목에서 백석 시인의 ‘고향’이라는 시를 가르치며 학생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과연 이 학생의 사고와 질문이 틀렸을까? 교과서와 시험 문제에 따르면 틀린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이 시에서 반드시 따뜻함을 느껴야할 것을 가르치며, 시험에서는 그 외의 다른 감정은 ‘오답’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학생은 결국 이러한 ‘감성을 외우기로’했다. 거기에 나는 한 술 더 떠 ‘너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평소 시나 소설 좀 많이 읽어야겠다며, 그 학생이 부족하고 잘못된 학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고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학생의 말도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적 합리성의 관점에서는 돈을 받고 진료를 해주는 의원에게서 동향사람이라고, 혹은 조금 자상하다고 해서 반드시 따뜻한 감정을 느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의원은 합리성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이며, 혹은 윤리학의 (물론 행위의 동기를 따져봐야 하겠지만) 의무론적 관점에서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늘 이런 다양한 관점의 사고를 막고 정답을 강요하는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대한민국 교육은 그동안의 숱한 세월동안 수 없이 많은 허물을 벗고, 옷을 갈아입으며 변화를 시도해왔다. 수능제도를 바꾸기도 하고, 반영하는 과목이나 비율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글쓰기 시험을 입시에 등장시키기도 했고,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하여 학생들 사이에서 한 우물 파기 전략이 유행했던 적도 있다. 심지어 나는 수능을 보지 않고 오로지 내신과 면접만으로 고3 여름방학에 대학에 합격하는 입시제도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요즘 학생들은 학생부 종합전형을 확대하겠다며 내신과 생활기록부 강화를 요구하는 입시제도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어떤 것도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병폐를 바꾸지는 못했다. 대학의 서열화, 성공에 대한 획일적인 인식, 양적인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등 자본주의적 사고관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시도하고 어떻게 준비해가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논술 교육 강화’ 속에 있다. 논술은 그 시험의 특수성상 수능과 달리 하나의 명확한 정답이 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하나의 제시문을 가지고 다른 제시문과의 연결 관계를 파악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주어진 대상을 분석해야 한다. 물론 대상을 분석하는 근거에 따라 나름대로 정답의 흐름은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력을 갖기 위해 저학년 때에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철학적 사고를 하며, 다른 친구들과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다양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학생들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삶을 계획하고 스스로 고민해보지 않은 것들을 그저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니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입시제도에 순응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과정이 아니니 그저 쉽고 빠르게 통과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생각하고 고민하는 능력을 알려주지 않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고를 차단해 버린 어른들의 잘못이다. 다양한 사고와 주체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키울 때 우리의 교육은 바로 설 수 있다. 그리고 그 근간은 다양한 사고를 허용하는 논술, 궁극적으로는 나와 타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사고와 교육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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