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더위로 막 접어드는 요즘이면 아이들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한다. 이럴 때 부모나 담임으로서 너희들을 ‘믿고 있다’, ‘응원하고 있다’, ‘ 잘하고 있다’는 긍정의 말 한 마디는 큰 힘이 된다. 5~6월은 그러한 북돋음을 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가 싶다.
몸과 마음에 비타민 충전
오래 전부터 담임을 맡으면 정규 고사를 전후로 주기적으로 아이들과 편지와 과일 등을 나누었다. 특히 이맘때가 되면 ‘비타민 보충’이라는 명목 아래 심신이 지친 우리 아이들을 위로하는 학급 행사를 하는 것이다. 과일 등을 함께 먹으며 실제 몸에 비타민을 보충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마음에 비타민을 보충해주고 싶은 것이 우선이다.
“늘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의 A야, 수학에 특히 관심과 적극성을 보여 흐뭇하고 기쁘다. 남은 고사에서는 부족했던 과목도 조금 더 분발해서 더욱 더 성장하는 A가 되길 바란다. 선생님은 우리 A의 저력을 믿는다. ^^ ”
“한 학기 동안 여러 가지로 힘든 데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수고 많았다. 많은 부분 걱정도 됐지만 또 잘 버텨줘서 고맙구나. 남은 시험도 흔들리지 말고 마음 편히 준비 잘해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몸과 마음 건강하자!”
잘하고 있는 아이들은 잘하고 있는 데로, 부족함이 보이는 아이들은 부족함이 보이는 데로 담임으로서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고 또 격려를 하는 것이다.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담은 글귀를 오렌지 잎으로 만들어 오렌지에 붙여 나누어가지는 작은 행사지만, 이런 마음이 큰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그간의 경험에서 체득해 왔다.
여러 해 전 전임 학교에서 고 3담임으로 졸업을 시키고 이제 사회인이 된 제자와 저녁을 먹다 우연히 그의 지갑 속에서 발견한 내가 써준 글귀를 보며 이런 작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는 마음을 더욱 굳혔었다.
지갑 속 귀퉁이가 다 해진 채 가지고 다닌 글을 보며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들킨 것이 부끄러운 듯 멋쩍어 하면서도 대학 다니면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힘들 때마다 보며 힘을 냈다고 했다. 내 기억 속의 그 녀석은 환경이 어려워 진학 생각을 못하다 3학년이 되어 목표가 생기고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무던히 노력한 친구로 기억한다. 그리고 짧은 글귀지만 그의 가능성을 믿고 잘 되리라 그를 응원했었다. 고 3때 성적 향상의 긍정적 경험이 바탕이 되어 결국 희망 분야에 진학하고 졸업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SNS를 통해) 보며 여전히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긍정의 힘
선생(先生) 이라는 단어는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말 이전에 말 그대로 먼저 태어나 경험이나 학예가 앞선 사람으로도 설명될 것이다. 앞서 태어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침의 이름으로 심어주고 싶은 것은 교과적 역량으로 ‘수학하는 힘’과 함께 인생을 먼저 산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힘’이다.
나 역시 고 3때 국어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이과였지만 당시 문학 과목인 국어 성적이 좋았던 이유도 그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특별히 잘하셨거나 대입 준비에 훌륭하신 분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주에도 몇 번씩 모의고사를 봐야 했고, 하루하루 좌절하고 실망하면서도 또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했던 고3의 힘든 시기에 당신이 읽으신 문학작품이나 철학서 등에서 힘이 되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기에 존경하고 좋아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내 인생의 좌우명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만나기도 했다.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의 중심 사상으로, 곧 ‘일체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나는 종교와 무관하게 실제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을 대하려 한다. 마음먹고 못 할일이 없고 또 마음먹고 애쓰면 어떻게든 되는 것을 많이 겪었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을 갖도록 말한다. 슬럼프가 있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고, 자신을 믿게 하며, 아예 부정적인 생각과 언어는 쓰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표현하는 것이 아름답다
격려의 메시지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다시금 우리 아이들을 하나하나씩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이는 교사뿐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5월을 맞아 초등학생인 작은 아이의 학교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이를 받아 아이가 부모에게 편지를 쓰는 행사가 있었다. 늘 재직 학교 학생들이 수험생이고 내가 당면하는 아이들이라 그 아이들에만 집중하고 살아오다 보니, 오히려 내 아이를 두고 편지를 쓴 것은 오랜만이었다.
막상 내 아이에게 편지를 쓰려니 막막했다. 하나하나 다시금 내 아이의 장점과 약점을 찾아 이를 격려하는 방식으로 편지를 썼다. 내 글이 본보기였는지 답 글로도 비슷한 방식의 편지를 받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의 이런 모습을 보며 이렇게 생각 하는구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
고3 친구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오래가는 이유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같이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고3 담임선생님이 생각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리라. 마음에 비타민이 필요한 시기, 우리 반, 우리 집 아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써보자. 이왕이면 청량한 과일과 함께 전해보자. 6월 모의고사를 앞두고 올해도 비타민 보충 행사를 준비한다.
“얘들아, 잘해오고 있다. 잘 될 거야. 무엇보다 몸과 마음 건강하자!”
반포고 박지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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