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면 되도록 도슨트(docent)의 안내를 청해 듣는다. 전문 지식을 갖춘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과 듣지 않는 것은 전시물을 이해하는데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경력 많고 해박한 도슨트를 만나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 지적인 안내자 도슨트들의 모임이 있다고 하여 가까운 백남준아트센터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예술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모임
고영래 도슨트는 “‘로제타 모임’은 도슨트 자원봉사자들의 자율적인 스터디 모임입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지금까지 17기의 도슨트 자원봉사자들을 배출했으니 도슨트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40명이 넘죠. 한 달 2회 모이는데 한 번은 센터에 모여 전시나 백남준 선생님 관련 스터디를 하고, 다른 한 번은 다른 미술관을 방문합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집트의 고대 유물인 로제타석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면서 소통과 도전에 관한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 이름이기도 하죠. 백남준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 예술을 사랑하고 공부하고 즐기고 도전하며 배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라고 소영옥(47·용인) 도슨트가 추가로 설명해 주었다.
전공 무관, 현대 미술에 대한 소견과 관심 있으면 지원
그렇다면 도슨트 봉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도슨트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니 선발과정이 꽤나 까다롭다.
대학 재학 이상 학력의 만 20세 성인 남녀가 지원할 수 있는데, 작품설명 및 전시 안내를 담당해야하기 때문에 전공은 무관하지만 현대 미술에 대한 소견과 관심이 있어야 하고, 주 1회 이상 책임감 있게 도슨트 활동이 가능해야 한다. 물론 미술, 건축, 음악, 공연 계열 학과 출신과 외국어(영어, 일어, 중국어 등)에 능통하면 우대한다고 한다.
자원봉사자 지원서를 제출해 1차 선발에 통과하면 합격자에 한해 ‘도슨트 자원봉사자 양성교육’이 진행된다. 미술관과 미디어 아트, 백남준의 삶과 예술, 작품 감상법과 현대미술의 이해, 외부 답사, 선배 도슨트 멘토링, 백남준의 영상 읽기, 현장 시연 및 평가 등 총 10주에 거친 교육과정이 진행되는데 최종합격자는 교육 이수 및 평가 후 최종적으로 선발된다고 한다. 선발과정을 보니 단순히 자원봉사자를 뽑는 다기 보다는 문화 활동가를 공들여 양성하는 것 같다.
도슨트 자원봉사 선발과정 거쳐야 해
도슨트 활동기간은 1년이며 기존 자원봉사자도 양성교육의 필수과정 1강을 포함한 총 2강 이상 이수를 해야 활동 연장이 가능하다니 재교육에도 공을 많이 들이는 듯하다.
지난해 17기 모집에서 선발된 한광조(46·분당)씨는 앞서 도슨트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외국에 살면서 미술관에서 전시를 많이 접했지만 전공자는 아니어서 자신이 없었어요. 1차에서 통과한 사람이 30명 이상이었는데 최종 13명만 선발됐으니 추천해준 친구도 제가 떨어질까 봐 마음 졸였죠. 외부에서 도슨트라 하면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미술 공부하는 딸이 엄마의 도슨트 활동에 자부심을 느껴 뿌듯합니다”라고 말했다.
본인에게 도슨트 활동이란?
2주전 초등 저학년 학생들의 안내 전시를 맡았던 주정자(51·용인)씨는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이나 영상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어린이들은 산만해지거나 형식적인 관람이 될 수 있는데, 이렇게 유명한 대한민국의 예술가를 학생들이 모른다는 게 안타깝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쉽게 설명하며 아이들에게 다가갔죠. 그런데 헤어지면서 어떤 아이가 ‘선생님, 저 엄마, 아빠랑 다시 올 거에요!’라고 말하자 모든 아이들이 ‘저도요!’를 외치며 호응의 물결을 치는 것을 보고 내가 오늘 할 일을 했구나 하는 뿌듯함이 몰려왔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김영원(50·서울)씨는 현대미술 공부하는 것이 좋아 서울에서 멀리 이곳까지 기꺼이 다닌다.
“현대미술은 어른들에게도 어렵죠. 얼마 전 전시를 보러 오신 노부부에게 투어 설명을 해드렸는데 ‘설명을 듣지 않으면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겠다’며 정말 만족하셔서 보람됐죠. 저희 애가 미술을 전공하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와 함께 미술에 관한 대화를 끊임없이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시작해 도슨트 활동 4년차인 이수진(48·수원 영통)씨는 다도에도 조예가 깊어 회원들과 차를 나누고 싶어 늘 다구를 들고 와 대접한다.
“우리 나이 또래에는 동창, 학부모, 운동 등 모임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 도슨트 모임이 제일 우선이에요. 좋아하는 분야를 같이 바라보고 일관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니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서로가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신뢰를 느낀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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