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초 김부용의 사랑 이야기를 품은 ‘광덕산’]

숲의 냄새와 고장의 이야기가 반기는 여유로운 산행

김나영 리포터 2017-05-22

기획 - 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다

지명은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다. 천안(天安).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도시. 지명에 최고의 찬사가 담겼다. 하지만, 그 엄청난 의미를 지녔음에도 정작 천안의 본 모습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천안을 소개할라치면 오래도록 뜸을 들이게 된다.
3년 전 고장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도솔 둘레길을 찾고, 걷기 시작했다. 이들은 천안을 상징하는 오룡쟁주를 중심으로 12구간을 정리해 매월 한 구간씩을 걷고 있다.
천안아산내일신문은 천안시민들과 함께 도솔 둘레길 12구간을 함께 걸으며 구간을 소개하는 ‘도솔 둘레길을 함께 걷다’ 시리즈를 시작한다. 시민들이 직접 내 고장을 알아보고자 하는 소중한 마음과 함께 도솔 둘레길의 아름다움과 곳곳에 숨은 천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편집자 주. 자세한 구간은 천안아산내일신문 블로그(mynaeil.blog.me) 참조>


3년 전부터 한마음고등학교 구자명 교장과 천안시민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천안 사랑 뽈레 뽈레 도솔 둘레길 걷기’를 진행하고 있다. 구자명 교장은 천안을 상징하는 오룡쟁주를 중심으로 한 걷기 길 7구간과 천안의 명산 5곳을 묶어 총 12구간을 정리했다(천안아산내일신문 1228호 3면 참조).
5월 도솔 둘레길 장소는 광덕산. 천안에 살며 누구나 한 번쯤은 올랐을 법한 친근한 산이다. 일반적으로 주차장에서 헬기장을 거쳐 오르는 1구간을 많이들 오르지만, 이번에 걷는 길은 광덕사 일주문 - 부용묘 - 장군바위 - 정상 - 광덕사 - 일주문으로 코스를 잡고 있다. 운초 김부용의 삶과 문학,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함께 담고자 하는 의도다. 



천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여유 

토요일은 한 주를 분주하게 살았던 직장인들에겐 모처럼 늦잠이 허락되는 날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평소와 다름없는 시각에 집을 나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지난 13일(토), 도솔 둘레길 걷기에 처음 참여한 날이다.
오전 8시. 사람들이 한 명씩 광덕사 일주문 앞에 모여들었다.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처음 참여한 사람들의 소개도 이어졌다. 이날 걷기에는 월봉초등학교 이경하 교사와 함께 온 4학년 학생 여덟 명도 함께해 더욱 생기가 가득했다.
걷기를 시작하며 처음 당도한 곳은 운초 김부용의 묘소다. 운초 김부용은 송도의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나이를 초월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도 알려져 있다.
무덤에 가까이에는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의 후원을 받아 정비석 작가가 적은 비문이 남겨져 있다. 정비석 작가는 신문에 명기열전을 쓰면서 1974년 운초의 묘를 찾아내 잡초만 우거진 봉분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자명 교장은 운초 김부용의 삶과 문학, 사랑 이야기를 전했다. 이야기 후 누군가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주변을 감싸니 그지없이 평온하고 흐뭇한 풍경. 그저 걷기가, 그저 산행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는 오랜만의 휴식으로 다가오는 도솔 둘레길 모임의 모습을 고스란히 알려준 순간이다. 


와락 반기는 숲의 냄새로 숨이 절로 깊어지는 시간 

잠깐의 휴식 후 이제 본격적인 걷기의 시작이다. 이날의 일정은 광덕산 정상까지 다녀오는 팀과 장군바위까지 오르고 인근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는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계획. 광덕산 정상 석류봉의 장관을 품고 오겠노라는 팀이 먼저 발걸음을 재촉한 후 산나물 채취팀이 뒤를 따랐다.
작정하고 정상을 찍고 오고야 말겠노라는 마음이 아니어서인지 걸음은 느릿느릿. 한동안 미세먼지에 시달리느라 창문 한 번 제대로 열지 못하고 공기청정기에 의존하며 살았던 몸이 공기의 변화를 알아챘나 보다. 깊게 숨을 쉬니 와락 들어오는 숲의 냄새. 주말 오전의 늦잠을 지불하고 얻은 대가치고는 굉장히 황송하다.
오르기 전에 천안의 인물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번엔 천안의 자연 이야기가 기다린다. 곳곳에 뻗은 풀과 나무에 대해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도시에 살아 풀과 자연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것이 늘 부끄러운 도시촌놈에겐 곁눈질만으로도 풀과 나무의 이름을 단박에 알아차리는 모습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까르르 웃고 장난치는 몇 시간이 훗날 얼마나 든든한 뿌리가 되어 있을지,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걸으며 잡담하듯 나누었던 이야기가 얼마나 그리워질지 상상조차 못할 어린 아이들이 함께 하니 걷는 내내 즐겁다. 



주말 오전 4시간이 주는 넉넉한 여유

아쉽게도 광덕산 장군바위 인근에서 해본다는 산나물 채취는 시기 상 진행하지 못했다. 올해 기후가 예년에 비해 빨랐던 탓이다.
하지만 굳이 아쉽진 않았다. 늘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바라보던 충혈된 눈은 모처럼 초록을 가득 담았고, 굽 놉은 신발에 옥죄어 정돈된 아스팔트에서만 또각거리던 발은 푹신한 황토를 마음껏 밟아 신이 났다. 작정하는 산행이 아니라 어울렁 더울렁 걸으니 몸의 고단함도 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오후부터 묵직해진 다리로 어려웠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동안 편안함에 길들었던 몸이 뭐라 투정을 부리든 기분은 내내 맑았다.
주말 오전 몇 시간 더 침대에서 버둥거린다 해도 피곤함은 몸에 덕지덕지 묻어있기 마련. 한 달에 한 번쯤 내 고장을 두 발로 꾹꾹 밟아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더욱이 미처 몰랐던 내 고장의 이야기까지 담아낼 수 있으니 앞으로는 또 무슨 이야기가 반기려나. 한 층 더 짙어질 6월의 도솔 둘레길 걷기는 흑성산에서 이어진다. 


운초 김부용은  … 김부용은 평안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는데 시와 글에 능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기생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19살에 평양감사 김이양과 인연이 시작된다. 당시 김이양의 나이는 77세였는데,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양인의 신분으로 만들었고, 정식 부실(室)로 삼았다.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되는 1845년 김이양은 9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이때 김부용의 나이는 33세. 부용은 16년 후 숨을 거둔다. 자신이 죽거든 김이양 대감 인근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 광덕산 연천 묘 근처에 묻혔다. 작품으로는 운초시집, 오강루(五江樓) 등의 문집에 한시 350여 수가 있다.
천안문인협회는 해마다 운초 김부용을 기려 해마다 추모문학제를 연다. 올해는 4월 29일(토) 그의 삶과 시 세계를 조명하는 추모문학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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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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