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와논술을말하다
조영호 원장
며칠 전 모처의 모임에서 중고등 학생과 지역에서 존경받는 분과의 소위 ‘열린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다. ‘좋은 직업은 무엇인가요?’, ‘공부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나요?’ 등 이러한 학생들의 순수하고 악의 없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하나의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다. ‘착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이 학생의 질문에 여기저기 작은 웃음과 당황함이 형성됐다. 질문이 어려워서 일까? 신선해서 일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 하지만 늘 생각하는 질문, 새삼스럽게 그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해보고 싶다.
‘착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착하다-선(善)-올바름’이라는 개념이 가장 유사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학자들과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나름의 ‘착함’을 얘기하지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개개인의 ‘착함’을 생각해 보자.
‘착하게 사는 방법’의 ‘방법’을 한자 ‘길 도(道)’의 ‘도’로 연결해 보자. 일반적으로 동양사상의 ‘도(道)라는 것은’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착함-선-올바름’을 향한 ‘도’이다. 그렇다면 ‘착하게 사는 방법’이란 질문에 ‘개개인’을 주어로 넣어 본다면 ‘개개인이 선하거나 올바르게 사는 길(방법)을 걷고 소망하는 것’이란 문장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큰 개념(국가적‧종교적‧사회적)이 아닌 ‘나-개개인’의 소망 대상을 연결해 보자. 그렇다면 개개인이 기독교인 일때 ‘사랑과 믿음의 길을 걷고 소망하는 것’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위한 길을 걷고 소망하는 것’ 그리고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대학을 가는 길을 걷고 소망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위 모임에서 질문한 순수하고 어린 학생의 ‘착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요?’란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가장 알맞은 어른의 대답은 대답이 아닌 ‘너가 소망하고 걷는 길이 무엇이냐?’라는 재질문이 선행했어야 한다. 결국, 상대방의 ‘착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상시에 얼마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가? 개별 인간에게 얼마나 구체적인 관심을 갖는가? 가끔은 허무한 ‘국가적 착함’ ‘종교적 착함’만 고민할 뿐 앞에 있는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되묻고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주제넘게 글을 마무리 해 본다. ‘착하게 사는 방법’은 ‘너와 나’가 서로의 생각을 끊임없이 재질문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는 과정 자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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