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성남 창세학교 문해교사 ‘박이현’ 시인]

보석처럼 빛나는 눈을 가진 나의 제자들

문하영 리포터 2017-05-17

매년€5월€15일,€그녀의 전화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울려댄다.€
초등학생부터 여든이 넘는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의 인사,€안부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했다는 그녀,
누군가의 선생님으로 살아온 박이현 시인의 삶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보았다.



또래들의 검정고시 준비 돕는 소녀 선생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생들 학업 때문에 바로 대학 진학을 못 했어요.€그때 제 공부를 하면서 어려운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어요.€저와 나이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학생들이었지만 아버지가 교육자이셔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자연스럽게 다가왔고,€어려움을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도 어린 마음에 들었네요.”
그때 가르쳤던 첫 제자들이 이제 적게는€40대 후반에서€50대 후반까지 거의 중년을 넘어섰는데 여전히 연락을 하며 잘 지낸다고 박이현 시인은 전했다.
“몇 년 전 스승의 날에는,€갑자기 중년 신사가 된 개구쟁이 남학생 제자가 무작정 차를 태워 갈 곳이 있다고 하더니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을 데리고 가는 거예요.€깜깜한 곳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지며 제자들이 모여서 케이크를 들고 있더라고요.€그 녀석들 때문에 나이트클럽을 다 가봤네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몹시 난처했다고는 하나 박 시인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시인 엄마는 독서 논술 선생님
유아교육을 전공한 박 시인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던€70년대 의성고등공민학교 새마을 유아원으로 발령을 받고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당시 특유의 성실함과 창의적인 교수법으로 청와대에서 전국 최우수 교사 표창장을 받기도 했단다.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알았지만,€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내 글을 써 보고 싶다는 문학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잠시 가르치는 일을 쉬게 되었을 때 문예창작과 수업을 들으면서 중간 중간 피곤한 몸을 일으켜 글을 쓰곤 했지요.”
90년대 초반,€문예사조 시 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해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한국문인협회 성남지부,€한국현대시인협회 등에서 활동하며 본인의 자녀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처음에는 내 아이들과 아이들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치려 했는데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독서 논술 수업을 하게 되었네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한글 선생님으로
분당으로 이사한 후 두 번째 선생님의 길을 걷다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커서 오전 시간에 여유가 생기자,€박 시인은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항상 지니고 있었던 ‘나누는 삶’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그래서 시작했던 것이 바로€2008년에 시작한 성남 창세학교 문해교사였다.€
“우리가 어릴 때 자연스럽게 한글을 깨우치는 시기를 놓치면€한글을 배우는 것이 어려워집니다.€말을 잘 하시니 쉽게 한글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어르신들이 글을 배우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하셔요.€그래서 다양한 연상법을 사용하기도 하고,€주변 사물을 사용해 자음과 모음을 가르쳐드리기도 하지요.”
점점 학교의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고 있어 처음에는 길지 않은 시간 봉사로 시작했던 창세학교 문해교사가 이제는 그녀의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커져버렸다.€그러나 배움에 목말라 있는 학생들이 엄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할 순 없었다.


주부들의 시낭송 선생님까지
일주일에€4~5일,€심지어 어떤 날은 오전과 야간,€두 번 수업을 위해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몇 번씩 왕복하기도 한다.€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지만,€그래도 힘을 낸다.€그녀에게 힘을 솟아나게 하는 ‘시’가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면 이상하게 힘이 납니다.€우연한 기회에 중앙도서관에서 ‘시 읽기’ 강좌를 맡아€2014년부터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많은 주부들이 시로 인해 위로를 받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을 봅니다.€신기한 것은 저도 시를 함께 읽으며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거죠.”
자기보다 고작 한두 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던 십대 소녀가 이제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여전히 그녀의 앞에는 그녀와 함께 한글공부를 하고 싶은 할머니 학생,€시를 읽고 싶은 주부 학생,€글 쓰는 법을 배우고 싶은 청소년 학생들이 두 눈을 반짝이고 있다.
“글을 쓰려고 촉을 세우는 행복한 시간부터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가르치는 시간까지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후회 없을 만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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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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