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 그레이트 하모니 오케스트라 가족봉사단

재능을 나누고 희망의 에너지를 얻다

이지혜 리포터 2017-03-16

수서동에 위치한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하 태화복지관)에는 조금 특별한 봉사단이 있다.
엄마 심경자씨와 두 딸(유일영, 유정영)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가족봉사단이다.
세 모녀는 지난 6년 동안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태화복지관을 찾아와 아이들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 연습을 해왔다.
말 많고 탈 많은 사춘기 두 딸을 데리고 어떻게 꾸준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공부와 아르바이트, 잠 등 항상 유혹하는 다른 일들을 뿌리치고 어떻게 매주 토요일 태화복지관을 찾아올 수 있었는지 의구심 잔뜩 품은 얼굴로 세 모녀를 만나보았다.



어린 시절 받은 ‘도움’을 나누는 마음으로
도시락 배달, 방과 후 학교 멘토링, 구세군 냄비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오던 심경자씨는 간헐적인 봉사보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2012년 8월 태화 그레이트 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만났다. 서울예고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큰 딸 일영양과 전공자는 아니지만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가 가능한 중1 정영양이 있었기에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좋은 뜻을 알게 된 악기점 사장님이 첼로를 후원해주고, 저렴한 값에 바이올린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 오케스트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심경자씨에게 피아노 소리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중 하나다. 형제가 많아 부모님께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피아노 학원 문 앞에 수북이 쌓인 아이들의 신발만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녔다. 성인이 되어 돈이 생기자 제일 먼저 한 일이 피아노부터 사서 배웠다는 그녀. 이미 굳어버린 손가락 근육을 한탄하며 심경자씨는 자신처럼 부러움만 키우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녀가 나눔을 실천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서울에 연고자가 없던 심경자씨를 1년간 자신의 집에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대학 지도교수의 따뜻한 도움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지도교수 또한 첫 직장생활지였던 삼척 주민들에게 받은 도움이 너무 고마워 훗날 삼척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자신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심경자씨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릴 교수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하지만 교수님이 그랬듯이 저도 교수님이 아닌 사회 구성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조건 없는 심경자씨의 봉사실천은 그렇게 또 다른 봉사의 씨앗이 되어 태화 오케스트라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봉사 통해 얻게 되는 강력하고 든든한 에너지
서울대학교 작곡과 학생이기도 한 첫째 딸 유일영 단장.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는 아이들을 위해 편곡을 담당한다. 같은 과 친구들이 레슨이나 연주회, 창작의 시간의 보낼 때 비전공자인 초등학생과 낡은 악기로 연주를 해보겠다고 낑낑거리고 나면 어떤 보람을 얻을 수 있을까 의아해 했지만 유일영 단장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녀는 “말로는 다 표현 못할 보람을 얻어 가요. 레슨을 하면 돈을 벌 수 있겠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편곡이 아닌 성인 대상의 작곡이나 편곡 공부도 필요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편곡을 잘 할수록 아이들은 보다 편하고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어요. 클래식의 대중화죠. 꼭 음악 전공자가 아니어도 클래식을 친숙하게 느끼게 되고 이렇게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접했던 아이들은 성장하면서도 클래식을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아요.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제가 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요. 신기하죠. 돈과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즐거움과 보람을 얻게 되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입 면접 전날에도 어김없이 태화에 나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면접 준비를 했다는 그녀. 일상 중에 늘 토요일 오전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일정이라 특별히 건너 뛸 필요를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단순 음악 봉사 뛰어넘는 인생 공부
모녀여전,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둘째딸 정영양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외대부고 시기 내내 토요일 봉사를 거르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도 거르지 않았다. 공부 계획을 짤 때 이미 기본으로 정해져 있는 일정이기 때문에 특별히 방해받는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정영양. 그녀는 “엄마와 언니가 하니까 저도 빠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셋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보다 좋은 방법을 고민하게 되고, 연주회 준비를 하나하나 다 챙기고 있더라고요. 다른 일로 싸워도 오케스트라 일 때문에 저절로 화해하게 돼요”라며 해맑게 웃는다. 단순히 음악 봉사인 줄 알고 시작했지만 타인에 대한 감정관리나 배려, 신뢰를 쌓는 법을 익히게 되고, 공연이나 연주회 기획 과정을 통해 학교생활만 했다면 알 수 없었던 소중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세 모녀.
정영양은 “처음에는 저도 욕심이 있다 보니 아이들을 빨리 훈련시키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런 욕심이 꼭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이제는 금방 따라하는 아이들은 욕심을 내서 지도하고,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줄 알게 되었어요. 저도 성장을 한 거죠. 아이들이 서로의 소리를 맞춰 합주를 완성할 때의 쾌감이란 이루말로 할 수 없이 기뻐요. 그럴 때는 제가 봉사를 한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떤 강한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오케스트라단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그리 특별한 건지 모르고 해왔다는 세 모녀.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더 성장했다고 말하는 그들.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다고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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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리포터 angus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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