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새봄….
생명의 봄이 남녘 끝자락에서 청라언덕을 지나 우리 마음속에 희망을 연주한다. 회색 바람이 드나들던 앙상한 나뭇가지엔 연녹색 움이 돋고, 광활한 대지에는 앙증맞은 새싹들이 시나브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머잖아 봄을 향한 그리움이 가녀린 연분홍 꽃잎을 불러내고 뜻밖의 외출에 지친 꽃잎은 무채색 꽃비가 되어 바람 속으로 제 몸을 던질게다.
원색의 한 떨기 꽃을 피우기 위해 모진 겨울을 견뎌낸 꽃나무는 희망이다. 시베리아에서 부는 앙칼진 칼바람과 황량한 광야에 홀로 된 듯한 처절한 외로움이 ‘네겐 따스한 봄 따윈 없다’며 무시로 위협했을 게다. 꽃나무는 삶을 에는 듯한 혹독한 고독 속에서도 오롯이 봄의 화사함과 여름의 무성함, 가을의 풍성함을 꿈꾸며 살아냈다.
초목이 죽음과 같은 겨울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봄에 대한 희망이다. 된바람에 이어 휘몰아치는 잎샘바람과 꽃샘추위를 견뎌내면 연녹색 훈풍과 연분홍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는 바로 그 희망이다. 그러기에 ‘꽃은 젖어도 꽃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시구처럼 추위에 휘둘리고 바람에 흔들려도 희망은 청초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희망에 의지가 더해지면
그 희망 너머의 소망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바라고 원하는 일이 소원이고 비장한 마음으로 반드시 이루려는 것이 비원이듯 기대나 바람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에 의지를 더하여 꼭 이루려는 바람은 소망이 아닐까?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부모의 소망이듯, 의지가 더해진 소망은 희망보다 야무지고 옹골차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학생들은 성적 향상의 비원과 멋진 학교생활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새 학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생활방식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지난 시간에 옭매여 사는 과거 집착형 부류가 있는가 하면 옛날을 정리하고 내일에 대한 새로운 계획과 의지로 생활하려는 미래 지향형 부류도 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 변명과 후회의 진원지라면 미래에 대한 지향은 활력과 변신의 발원지가 된다.
변명과 후회로 남 탓과 절망 속에 빠져 산다면 과거의 삶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기에 단순한 뉘우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심(決心)과 결단(決斷)과 결행(決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음을 다잡는 결심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썩어가는 부위를 완벽히 도려내야 더 이상 썩지 않는 것처럼 옛것과 단절하려는 결단에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과감한 선택이란
그런 의미에서 선택은 취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에 가깝다. 공부를 하려면 무절제한 게임 습관을 버려야 하고, 성적을 올리려면 집중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치우고 갈팡질팡하던 생활태도도 바꿔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꿩 먹고 알도 먹으려는 속셈이니 쉬운 결심에 어려운 결단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옛것을 끊고 도려내는 결행에는 생각보다 많은 걸림돌이 있다. 에너지가 필요한 의지적인 노력과 가보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일 게다. 특히 편안함에 길들여진 생활습관을 깨뜨리고 가보지 않은 낯선 것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은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 불안의 틀을 깨고 새로운 계획을 결행하는 데는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을 이겨낼 용기와 동기유발 외에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일시적인 행동이나 보여주기 식 이벤트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로에 의지가 더해지면
대학 수시모집은 학업능력과 지적 호기심, 발전가능성과 성장잠재력을 평가하는 전형이지만 그중에서도 전공적합성은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이다. 전공적합성은 진로나 학과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탐구의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진로나 학과에 대한 관심을 얼마나 의지적으로 탐구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수시전형의 요체이다.
그러기에 진로에 대한 확신 위에 창의적 체험활동을 얼마나 구체화했는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동아리활동에서는 진로와 연계된 활동을 얼마나 지속적·주도적으로 참여했는지가 중요하고 봉사활동에서는 시간보다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활동의 진정성을 입증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진로활동 역시 희망한 진로를 보다 구체화하는 과정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여행
이제, 또 한 해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진정한 여행은 풍경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이고 가장 어려운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라는 말이 있다. 머리가 지식이라면 가슴은 울림이고 발은 실천이기에 생명에 대한 외경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눈앞에 펼쳐질 세상에 의지적으로 반응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느 시인은 사람은 누구나 꽃이라고 하였고 어느 가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였다. 아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희망 너머의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새봄아! 이제 새로운 눈을 열기 위해 머리와 가슴과 발로 꽃보다 아름다운 여행을 출발해 보자!
이종철 교사(휘문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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