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달팽이 사진관’ 황재철 대표(49)의 천직과도 같다. 17년을 천안 원도심에서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왔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온통 디지털로 바뀌기 시작했다. 황 대표도 변화의 물살에 이끌려 2000년부터는 디지털 사진작업을 줄곧 해왔다. 인물사진은 물론, 특히 업체 사진, 제품사진 등 특별한 상업적 사진작업을 해오던 터라 포토샵은 기본이었다.
그러나 실체와 다른 사진들 속에서 본질을 잃어버린 수많은 모습을 보며 황 대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서서히 엄습해오는 회의가 황 대표를 짓눌렀다.
황재철 대표
본질의 실체 잃어버리는 사진에 회의 느껴
“터무니없이 실물과 다른 사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포토샵을 하지 않으면 사진을 못 찍는 걸로 오해하죠. 어떤 이는 사진관 장비보다 더 좋은 카메라를 들고 와 찍어달라고 해요. 사진가는 의도하는 작품을 찍지만 사진사는 의뢰받은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왜 그렇게 자신과 다른 모습을 원하는지 황 대표는 답답했다.
특히 웨딩사진은 기대치가 많았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포즈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찍었다. 사람들은 원했다. 개성과 진실을 담은 사진이 아니라 꾸미고 포장된 사진을.
그러던 중 건물주가 건물을 내놓으면서 가게를 비워야 했다. 진실이 왜곡된 사진에 회의를 느끼며 살던 참이었다. 사진을 접고자 했다.
그런데 웬걸. 우연찮게 흑백필름에 눈길이 갔다. 흑백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흑백필름이 주는 미려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때마침 ‘청년과 함께하는 원도심 재생사업’ 공모에 잠시 나이 제한이 풀려 흑백사진을 주제로 응모했다. 사진 찍는 인생이 쭉 이어질 운명이었을까. 지난해 10월, 황 대표는 그만두려던 사진관을 원도심에서 다시 열었다.
흑백암실
흑백필름의 무수정 사진, 진실 볼 수 있어
오래도록 봉인한 장비를 다시 꺼내왔다. 원도심 가운데 흑백필름 작업실을 꾸미고 달팽이 사진관을 열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생각보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백일이나 만삭 등을 기념하거나 가족 또는 커플이 함께한 특별한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액자에 끼워 완성한 사진은 선물꾸러미처럼 만들어 배송했다. 흑백사진은 중장년들에겐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고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가 됐다.
“디지털로 찍은 흑백사진과 흑백필름사진이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요. 흑백필름사진은 더 아름답게 빛을 표현하죠. 흑백이 주는 미묘한 음영과 컬러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감성이 살아나요. 또한 흑백필름의 무수정 사진은 진실을 보여주거든요.”
달팽이 사진관이 생긴 덕분에 흑백필름을 인화하려고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됐다. 달팽이 사진관은 충남에서 유일한 흑백필름 전문 사진관이다.
작업실 일부
삶의 활력소 된 달팽이 사진관
황 대표가 달팽이 사진관을 열고 가장 변한 건 표정이다. 주변에서 얼굴이 편해졌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조미료 같은 디지털에 익숙해 있다가 흑백이 주는 감동에 파묻히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없어요. 마음이 하고 싶은 일을 드디어 찾았나 봐요. 작업이 즐거우니 표정이 즐거울 수밖에요.”
마음으로 더 다가가고 먼저 웃는다. 그러면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이 흑백필름에 담긴다.
황재철 대표가 흑백필름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자 큰 맘 먹고 기획한 ‘무료 자가촬영 프로젝트 100’은 흔쾌히 참여자가 늘고 있다. 연말 따뜻한 전시로 거듭날 계획이다.
황 대표는 천안 원도심이 무작정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아날로그 문화를 부흥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흑백필름이 추억이 되고 신문화가 되는 것처럼 그런 문화의 거리 말이다.
“다시 원도심에서 사진을 시작한 이유죠. 그게 진짜 원도심의 매력이 될 테니까요.”
촬영문의 : 010-5418-6329
황재철 대표가 선사하는 세 가지 사진 이야기
◆ 흑백암실 기초 교육
흑백필름 인화 작업을 일대일 방식으로 직접 가르쳐 주는 교육. 자신이 의도한 사진을 예견 예측하며 인화할 수 있게 체계적으로 지도한다. 재료비 지원공모를 통해 비용을 절감해 수강생들의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암실 작업은 꽤 유용한 사진공부가 될 것.
◆ ‘무료 자가촬영 프로젝트 100’에 참여해 보세요
흑백필름으로 스스로 자기 모습을 찍어보는 프로젝트. 달팽이사진관에서는 누구나 흑백필름으로 자가촬영을 해볼 수 있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스스로 다양한 표정의 자기 모습을 찍어보는 재미난 경험이다. 작업 후 사진 찾을 날을 문자로 알려준다. 촬영 및 필름 값은 무료. 100명 선착순.
단,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사진은 액자에 끼워 멋진 작품으로 재탄생시켜 연말에 전시될 예정이다. 참여자들은 자신이 주인공인 작품사진을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황 대표는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은 전화로 촬영일을 예약하면 된다.
◆ 황재철 대표가 알려주는 사진 잘 찍는 꿀팁
1. 피사체에 다가서라. 물리적 거리보다 대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와 대화가 중요하다.
2. 빛을 느껴라. 빛은 시간마다 다르다. 빛의 색, 양, 명암, 위치에 따라 사진이 달라진다.
3. 스마트폰 사진 기능을 활용해라. 어렵지 않다. 미리 숙지해놓으면 즉시 원하는 사진을 찍을 때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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