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구미동의 오래된 아파트 상가, 제주에서부터 태백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의 손에는 유명 브랜드의 최신 양털 코트에서부터 적어도 20년은 족히 장롱에서 묵었을 법한 오래된 디자인의 밍크코트 등 각종 모피들이 들려있다. 그냥 지나가다 들린 손님들이 아닌지라 본인들의 소중한 옷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든든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80년대 국내 최초 내수용 모피 제조 및 개발
무지개사거리 근처 아파트 상가의 작은 수선집을 운영하는 김홍길 대표는 1980년대 초 모피를 전문으로 하는 의류업체를 설립하고 국내 내수용 모피를 최초로 제조 및 개발했다. 국내 유명 디자인 브랜드 등과 협업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독자적인 브랜드로 서울 시내 백화점에도 진출했으나 IMF를 포함한 두 번에 걸친 재정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결국 2000년대 초반 사업을 접고 구미동에 모피 전문 수선집을 차렸다. 김 대표는 “어지간한 의류 브랜드의 대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 시절을 생각하면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있어서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으니 가끔 처량한 생각이 들긴 해도 내가 살아온 길에 대해 후횐 없어”라며 꼼꼼하게 고객들의 가져온 모피를 살핀다.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에 한쪽 벽에는 몇 백 장의 패턴이 가득 걸려있고, 손님들이 맡긴 각종 모피들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대기 중이다. 다른 한 쪽 벽에는 여러 대의 재봉틀을 비롯한 온갖 실이 빽빽하다.
해외에서까지 알음알음 찾아 온 고객들로
문전성시
인터뷰 중에도 손님들은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태백에서 고칠 밍크를 가지고 왔다며 터미널에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묻는 손님에겐 택시비 드릴 테니 택시 타고 운전기사 바꿔달라고 한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일반 수선은 아예 못 받고 오로지 밍크, 무스탕, 이런 것만 받는 데도 거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할 만큼 물량이 많다고 한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패턴을 만들어 옷을 짓고, 모피를 만진 김 대표와 그의 옆에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지킨 김상림 실장은 이제 서로 눈빛만 봐도 뭘 해야 하는지 알 만큼 손발이 척척 맞는다. 김 실장은 “사실 우리는 ‘수선 서비스 용역’을 제공하는 거라 비용의 정확한 책정이 어렵다”면서 “고객의 입장에서는 좀 더 싼 가격을 원하고, 서비스 제공자는 좀 더 비싼 가격을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여긴 좀 다르다”면서 “설 연휴를 고국에서 보내려 나온 해외에서 오신 고객이 오래 전 부모님께 물려받은 구식 펑퍼짐한 밍크코트를 본인의 몸에 딱 맞게 조끼로 바꿔 드렸는데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가슴이 찡했다”면서 “그 분이 가시면서 밥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수선비에 얼마를 더 넣으신 것을 가신 후에 알았다”라고 미소를 짓는다.
아들과 함께 정말 제대로 된 한 벌의 옷
제작하고파
김 실장의 이야기를 듣던 김 대표에게 작은 가게에서 일하긴 기술이 아까우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무대를 넓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서른 된 아들에게 일요일마다 ‘특별 과외’를 진행 중이란다. 공대를 졸업한 아들이 진로를 바꿔 아버지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스페인 행 비행기 표만 쥐어주며 스페인에 가서 가죽공장들을 둘러보고 유럽의 의류산업 전반을 ‘발로 뛰며’ 돌아보고 오라고 좀 특별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국 아들은 비행기 표 한 장 들고 가서 유럽에서 일 년 가까이 ‘본인만의 공부’를 하고 돌아와 현재 모 유명 의류 브랜드에 입사해 실무경험을 쌓고 있다.
“옷이란 게 요즘 워낙 대량 생산되니 쉽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가만히 보면 ‘제대로’ 만들어진 옷은 찾기가 힘들어. 인체는 각양각색의 곡선으로 이루어져있는데 평면인 패턴을 사용해 정확하게 그려서 옷을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거든. 패턴뿐만 아니라 각각의 소재들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재봉도 마찬가지지. 옷 한 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면서 정말 제대로 된 옷 한 벌 탄생시키는 곳을 올 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아들과 함께 꾸리려고 준비 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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