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입 수능(11월 17일) 이전에 실시한 연대·서울시립대·건대·동국대·홍대의 논술고사를 다수의 입시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대체로 교과과정 내에서 쉽게 출제돼 수험생의 체감 난이도가 낮았다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필자 역시 제자들에게 일일이 복귀질문을 던져 본 결과 연세대 인문계 논술의 경우 칸트의 영구평화론, 문명의 유입 등 학생에게 비교적 친숙한 소재가 제시됐다. 특히 수리 논술은 수험생들로부터 단군 이래 가장 쉬웠다는 평을 받았다. 다항함수와 원의 접선, 함수의 극한 등 상대적으로 쉬운 단원에서 주로 출제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과학도 지난해보다 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동국대 인문계열 논술은 작년 시험에서 까다롭다는 평을 받았던 도표 분석 등을 올해 출제에서 배제하였다.
이 같은 논술고사 출제경향의 변화에는 정부 정책이 한 몫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올해 ‘대학별 고사 선행학습 영향평가’를 실시했다. 고교 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면 정원 감축, 지원금 삭감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올해 평가에서는 연세대·서강대 등 12개 대학이 전년도 입시에서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난 문제를 출제했다는 지적을 받고 개선 계획을 제출했다.
논술 등 대학별 고사의 선발 인원이 줄고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 확대되는 움직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입시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 “수험생들이 몇 년 전까지도 어렵게 출제되는 논술에 부담을 느껴 논술 전형을 아예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학종 확대로 학생들이 논술전형보다 학종전형을 우선 고려하자 대학들이 논술의 난이도를 낮게 조정하여 경쟁률을 유지하려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논술,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아무리 논술의 난이도를 낮췄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입시 전형의 한 요소로서 치열한 경쟁의 시험인 것은 분명하다. 원래 시험이라는 제도가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합격과 불합격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지 않는가.
이런 사실을 충분히 안다면 논술의 난이도가 낮을수록 조그마한 실수 하나가 합격의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수험생이 논술 제시문 분석을 대학의 출제의도에 미세하게라도 어긋나게 해석하면 여지없이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물론 원고지 사용법, 맞춤법 등 논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사항들도 예외가 아니다.
같은 양의 공부를 하더라도 단기간에 몰아서 하는 것과 나눠서 꾸준히 하는 것에는 엄청난 학습효과 차이가 난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뇌는 공부를 쉬는 동안에도 많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특히 언제 논술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그 시작점이 무척 중요해진다. 우리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지식은 무르익게 된다. 글쓰기도 성숙해짐은 물론이다.
그리고 독서의 중요성은 불조심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논술 대비로 역시 독서만 한 게 없다고 봐야한다. 지식과 글쓰기 양면을 모두 느리지만 확실하게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보통 학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독서기록에 신경을 많이 쓰듯 논술도 마찬가지로 읽을 책을 선정하는 데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여러 점 들을 고려했을 때 필자가 판단하는 진정한 논술 대비의 적정한 시작점은 고1 겨울방학부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고3 시작 무렵 논술학원의 문을 두드린다면 앞서 언급한 독서와 글쓰기의 성숙도 관점에서 이미 늦은 시기가 되는 것이다.
박강륵
국풍20000
목동 입시전략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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