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지러운 세상이다. 많은 것들이 혼돈과 불신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어둠과 미망이 모두의 가슴 한 쪽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이런 불온한 현실 앞에 순수의 고갱이들만을 모아 지친 영혼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네줄 시 한편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언제나 시와 함께 하며 맑고 깨끗한 시심(詩心)이 온 세상을 물들이기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 낭송에 나선 사람들, 수원시 ‘시울림 낭송회’. 그들이 읽어 주는 시에서 전해지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따라가 본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울리는 시 낭송
조용히 배경음악이 깔리고, ‘시울림 낭송회’의 심춘자 사무국장의 시 낭송이 시작됐다. 도종환 시인의 ‘시래기’가 낭랑한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14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시울림 낭송회’는 매주 화요일마다 ‘수원여성문화공간 휴’에 모여 시와 시 낭송 공부도 하고, 발표회나 공연 때면 그 준비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2012년 ‘시울림 낭송회’가 만들어진 이래 시 낭송이 필요한 여러 행사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시울림 낭송회’ 자체 발표회뿐만 아니라 성곽 작은 음악회, 시낭송 콘서트, 휴와 함께하는 명절 후 휴식 및 동아리페스티벌 등 여러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고, 시 극·시 퍼포먼스·시 노래 등 다양한 공연들을 펼치고 있다. 특히 매년 수원시민 인문교양아카데미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참석자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또한 시의 울림이 필요한 곳을 찾아 시 낭송을 하는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춘자 사무국장은 “시 낭송이 있을 때마다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노래와 음악은 비교적 듣기 쉽지만 시 낭송은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감동의 깊이를 달리 느끼는 것 같다. 인문학 강의 오프닝 때 시 낭송이 없으면 왜 안하냐고 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 심어주고
치유의 역할도 해
시 낭송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황혜란 회장은 “시를 먼저 이해하고 시를 낭송함으로써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지며 치유의 역할을 한다.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공감을 자아낸다”고 설명했다.
회원들은 정말 시 낭송이 그런 힘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물론 시 낭송을 통해 회원들 스스로도 치유되고, 성취감이나 보람을 많이 느낀단다.
윤영화 회원과 소윤서 회원은 요양원 등에서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낭송해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를 듣는 어르신들이 울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자녀들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훔친다고. 정숙인 회원도 낭송 때면 좋은 시를 감상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단다.
시를 직접 쓰기도 한다는 정다운 회원은 “시를 쓰는 것보다 낭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시를 음미하면서 운율에 맞춰 읽으면 사람들이 시를 가까이 느끼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과 낭송 등을 통해 다양한 시를 접할 수 있어 시간이 갈수록 시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고 전했다.
시여, 우리 삶 속에서 영원하라!
시는 회원들의 가슴에도 살포시 내려앉아 삶의 모습을 많이 변화시켰다. 좋은 시를 접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다 보니 몸과 마음이 예뻐지고 있다는 윤병선 회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신외섭 회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시를 접하고서 표정이 바뀌었다. 눈동자가 깊어졌다고나 할까. 말을 하는 매너가 좋아지고 마음이 순화됐다.” 김수복 회원은 “취미로 시를 접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생각에 늘 겸손해야겠다고 자신을 다 잡는다”고 설명했다.
그런 긍정적 변화를 준 ‘시울림 낭송회’에 대한 회원들의 애정은 참 각별하다. 참가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임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문정희 회원은 타 동아리나 모임보다 훨씬 뿌듯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자랑한다. “현실에서 각박하게 살아왔는데, 선배 회원들의 시 낭송을 들으면서 시 속에 녹아 있는 삶을 느낀다. 소녀시절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시간”이란다. 이종반 회원 역시 “이 나이에 시를 배울 수 있고, 남 앞에서 시를 낭송한다는 자체로도 행복하다. 살아가면서 채워지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시 낭송을 배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행사에서 우리의 삶 속으로 맑고 깨끗한 시심을 나눠 주기에 바쁜 ‘시울림 낭송회’ 회원들. 앞으로는 더 분주할 것 같단다. 시 낭송 지도, 좀 더 다양한 행사 참여와 재능기부를 포함해 시 낭송 대회 주관 등의 활동도 계획 중이기 때문이다. ‘시울림 낭송회’는 누구라도 아름다운 시를 함께 낭송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원여성문화공간 휴’에서 기초반을 수강한 뒤 합류하거나 시 낭송 경험이 있다면 바로 참여할 수 있단다.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회원들 중 누군가 애송시라며 알려준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과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늘 한번쯤 멋지게 소리 내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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