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증인가 법무법인 누리
대표변호사 하만영
A씨(70대, 여)는 2015년 8월 자신이 가진 부동산과 현금 9억원을 '생전에는 내 생활비와 병원비로 사용하고 사후에는 4명의 딸에게 똑같이 나눠준다'는 유언대용신탁계약을 하나은행과 체결했다. 치매 증상이 있던 A씨는 신탁계약을 해지·변경하기 위해서는 수익자인 딸 4명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 한다는 특약을 넣었다. 하지만 A씨는 5개월 뒤 마음이 바뀌어 "신탁계약 체결 당시에 이미 치매 환자로 신탁계약의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수익자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만 신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재산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신탁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A씨의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2012년 신탁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59조 '유언대용신탁'은 피상속인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금융기관이 피상속인이 신탁한 예금과 채권, 부동산 등 자산 관리를 맡고,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그 금융기관이 신탁계약의 내용에 따라 재산을 상속 집행한다. 복잡하고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따지는 유언에 비해 신탁계약을 통해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상속계획을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2부는 A씨가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신탁계약 무효소송(2015가합71115)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위탁자인 A씨가 하나은행과 신탁계약을 맺을 때 사후 수익자인 자신의 딸 4명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했는데, 이러한 계약을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신탁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A씨가 한 '인지기능검사 및 면담결과'를 보면, A씨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며 "A씨가 신탁계약을 맺을 당시 치매때문에 의사무능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유언대용신탁의 법적 성질은 피상속인이 언제든 내용을 변경·철회할 수 있는 '유언'이 아닌 '계약'이기 때문에 피상속인이라도 계약 내용에 반해 해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A씨가 불복하여 항소를 하였으나, 항소심에서도 원심의 선고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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