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투스의 ‘라디오 부이’]

그들이 수요일 밤마다 탄천에 모인 이유는?

이세라 리포터 2016-11-17

혹시 지난 11월 5일 토요일 저녁 탄천을 걸어 보았는가? 그날 탄천의 20여개의 다리에서는 평소 탄천을 즐겨 걷던 사람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다리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각자의 사연을 곁들인 라디오가 송출되었다. 평소 무심하게 걷던 산책길에 이게 무슨 소리지 하면서 귀를 기울이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단 하룻밤만의 이벤트였지만 이날을 위해 준비기간은 무려 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11월 5일 탄천 20여개의 다리에 송출된 나의 이야기
늦가을 어스름한 밤 수내역 근처 탄천변에 하얀 몽고텐트가 설치되었다. 거기에는 ‘라디오부이- 속삭이는 밤의 다리’의 현수막이 붙여졌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간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따듯한 차를 권하기도 했다. 이 이벤트는 분당의 예술단체 ‘알투스’에서 성남시민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날을 위해 7개월 전부터 지역 내의 다양한 직장인, 주부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정이 있어 끝까지 지속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포함해 약 30여명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최종적으로 10명 정도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우선 25.7km에 이르는 탄천 산책로 전 구간을 답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수요일 밤마다 모여서 복정-가천대-태평-모란-이매-서현-수내-정자-미금-오리에 이르는 총 10개 지하철역을 걸었다. 거기다 이매-판교로 연결되는 탄천 지류 구간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답사는 단순한 걷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름밤에는 수내역 탄천의 물이 빠진 분수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음악을 들었고, 이매역 부근 천변 운동장에서는 국민체조를 비롯한 추억의 놀이를 했다. 오리역 근처 구미교 밑에서는 목탄으로 어두움을 그렸다. 맨발로 땅을 느끼기도 했고, 눈을 감고 서로를 의지하며 느리게 걷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탄천을 걸으며 자신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감각들은 그림과 글로 기록하였다. 그렇게 ‘감각의 워밍업’을 마친 뒤 자신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좋아하는 음악을 내놓게 되었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결국 이날의 라디오 원고가 되었다. 이에 알투스의 이계원 대표는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과 구도심(수정구), 신도심(분당구), 최신도심(판교)에 이르는 거주지의 다름이 있지만, 모든 참가자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추억’이다”라로 말했다.
휴대폰을 끄고 밤의 탄천을 걷던 참가자들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서로의 말을 경청했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기억들을 공유하며, 마치 라디오를 듣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라디오를 준비하게 되었다. 대본을 구성하고 발음을 다듬고 녹음을 하는 과정에서 글 작가, 분당 FM의 라디오DJ, 성남미디어센터 소리스튜디오 등 전문가와 전문장비의 도움이 더해져 의미가 있었다. 



일상이 예술이어야 인생이 특별해, 가까운 탄천 활용해
‘라디오 부이’는 본래 해상에서 조난당했을 때 보내는 구조신호를 가리킨다. 탄천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부이’의 사연들은 ‘내가 여기에 있다’고 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가. 삶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세상으로 나에 대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데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라디오 부이’의 작은 스피커를 통해 세상을 향한 말 걸기 시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작업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참가자들의 소감도 궁금하다. 란다(동안교, 소박한 감사)씨는 “이어폰을 끼고 벤치에 앉아 쉬던 시민도 어디선가 나오는 노래와 목소리에 귀기울여주는 모습이 괜히 반가웠어요. 라디오가 잠시 돌아가는 중간에 다리를 지나가버린 사람들을 보며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가 이렇게 저렇게 산책길에 내가 마주했던 것도 있지만 놓친 것도 많았을 사실을 떠올리며 혼자 인사를 보내기도 했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여주는 모습에 그동안의 ‘밤의 산책’ 시간을 돌아본 따뜻한 날이었어요”라고 하고 유임(구미교, 탄천산책)씨는 “여러 번 대본을 고치고 연습한 녹음이었는데도 막상 다리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감동적으로 다가왔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가가서 포스터와 안내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하기도 했지요”라고 했다.
이들은 그동안 본명을 숨기고 별명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이름에 가려진 본인의 본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 대표는 “일상이 예술이어야 인생이 특별해요. 힘들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늘 곁에 있는 탄천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이런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팍팍한 일상에서 나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소망이 이루어져서 기쁘고 다양한 전문 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협업을 하는 과정 또한 의미 있는 일이었답니다”라고 말했다.
내년의 탄천은 어떤 식으로 아름다움이 표현 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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