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분노를 넘어 다시 민주주의로

지역내일 2016-11-14 (수정 2016-11-14 오전 12:34:4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가가 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지기도 하고, 이 정국이 어떻게 수습될지 불안한 마음도 가집니다.
국가가 붕괴하거나 사회가 무너지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시민들의 기반이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순실이 이슈 인물로 부상했을 때, 저는 처음에 장영자가 떠올랐습니다. 전두환 정권을 뒤흔든 대형 사건의 중심인물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장영자 대신 김재규가 떠오릅니다. 그는 유신철권통치를 종식시킨 인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지금 드러남으로써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이 임기 말까지 드러나지 않은 채 이어졌더라면 무슨 일을 어떻게 저지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무속과 운명철학이 성행하는 사회

박-최 게이트는 최태민-박근혜의 불행한 관계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무속인에서 승려와 목사를 사칭하며 접근한 최태민에게 빠진 박근혜는 결국 평생을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대통령이 되어 국가를 통째로 그들에게 바친 셈입니다. 다수의 여성을 부인으로 삼은 그가 영적인 괴력을 자랑하고, 실제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과 폭력배들을 대동하여 축재하며 탐욕을 채웠습니다. 최태민과 그의 덫을 벗어나지 못한 박근혜는 우리사회의 약점인 저급한 젠더 감수성, 미개한 철학적 종교적 착종, 그리고 헛똑똑이만 키워내는 행정 사법고시와 출세지향의 고학력자들을 오늘 추풍낙엽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철학과 종교의 외양과 달리 실제 생활세계는 운명철학과 기복적 신비주의가 지배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박근혜 

바보 공주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옆에서 지켜주실 순수하고 극진한 우리 할머니들의 마음도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는 불쌍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그녀가 총탄에 쓰러진 어머니로 인해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오히려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대신 하게 함으로써 박정희 대통령은 딸에게 치유 불가능한 심리적 부담을 덮어씌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허약한 정신력으로 헤매던 그녀는 결국 최태민의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극단적인 독재 정치를 이어가던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의 저항이 고조되는 시점에 자신의 심복이 쏜 총탄에 쓰러졌고, 민주주의 회복의 기회를 광주학살로 짓밟아버린 전두환 대통령은 전 국민의 항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할 때 시민들은 그녀가 아버지의 역사적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정치를 잘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가 막힌 일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보니까, 그녀는 애초에 공적인 임무를 맡기에는 너무도 심약한 정신력이었습니다. 


나라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정치권에 대한 회의가 있습니다. 야당이라고 잘 할 수 있을 것인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모든 일을 야당에 맡겨두는 상황이 아닙니다. 국민이 나서서 정권을 물러나게 할 것이기 때문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야당에게도 확실하게 요구할 것입니다. 비상시국회의에 참가한 단체가 전국에서 몇 천개 시민단체입니다. 시민사회도 종종 분열하고 다투지만, 이렇게 국민들이 전폭적으로 나서서 동참하고 연대하면 그들도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게 됩니다. 끈질기게 승리를 만들어가는 민주항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절망스럽지 않습니다.
손석희의 뉴스룸이 여론의 흐름에 중심을 잡고 있고, 언론노조와 독립언론이 지금까지 노력해온 경험에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일부 극단적 일탈적 언론들을 잠재우고 시민세력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낼 것입니다.
덴마크는 시민단체 회원이 전국민의 4배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평균 4개의 시민단체 회원으로 회비를 내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자세로 협력하면 엄청난 시민의 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가족들 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동참하며 인터넷에 댓글을 쓰고, 기득권 세력의 퇴진을 함께 외치면 분노의 함성으로 민주주의를 되찾는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김의수(전북대 명예교수. 독일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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