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요? 정말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게 됐어요.”
천안역 주변에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전시를 위한 무료 갤러리가 생긴다. 갤러리를 운영하려면 적잖이 돈이 들 텐데 청년예술가들에게는 전시대관료를 전혀 받지 않겠단다. 작가의 작품이 팔렸을 때 비로소 최소비율로 나눠 받겠단다. 대체 이 수상한 갤러리 주인은 누굴까.
현재 단국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영주(24)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11월 중순경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인테리어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갤러리 탄생의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예술 하는 친구들의 안타까운 현실 발견
우연히 친구 대학 플리마켓에 갔다가 미대생 친구들이 작품을 아주 헐값에 팔고 있는 것을 봤다. 친구는 “팔 곳도 마땅찮고 사는 사람도 적다. 재료값이라도 받으려면 이 돈이라도 받고 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가 막혔다. 미대생 친구들은 비싼 재료를 쓸 돈이 없어 주말엔 항상 알바를 다녔다. 밤새 작업해 새벽까지 도자기를 구워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겨우 재료값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배우려면 작품을 만들어야 했고 비용은 어디서든 충당해야 했다.
“천안 아산에 대학이 좀 많습니까? 그런데 졸업전은 거의 서울 가서 하더군요. 천안의 웬만한 전시관은 유명작가들의 작품만 걸어두려 애쓰고 대관료는 왜 그리 비싼지, 돈 없는 학생 작가들이 전시를 하려야 할 수가 없어요.”
김영주 대표는 몹시 안타까웠다. 해결해주고 싶은 의지가 불끈 솟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공간부터 구했다. 천안 원도심에 빈 건물 1층을 임대하고 곧바로 인테리어에 착수했다. 그런데 우연 중의 우연이 찾아왔다. “임대한 건물은 알고 보니 30년 전 부모님이 결혼한 예식장 건물이었어요. 감회가 남달랐죠. 부모님의 소중한 추억이 서린 공간에 자식인 내가 꿈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예식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으나 김 대표 어머니가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건물주인도 김 대표를 적극 응원하며 도와주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느꼈다.
In the Gallery, 人 the Gallery
인 더 갤러리는 청년예술가들에게 전시대관료를 받지 않는다. 판매금액도 작가들이 정하고 판매가 이루어지면 작가들이 재료비를 빼고도 충분히 가져가게끔 수수료를 정했다. 또 판매금의 5%는 지역에 기부할 계획이다. 고 1때부터 해온 기부 습관을 잇고 싶었다. 가난해서 어려움을 겪는 어린 미술학도들에게 작가들의 재능기부도 기획하고 있다.
김 대표가 의미를 부여한 인 더 갤러리는 영어로는 In the Gallery, 여기서 In은 사람 인(人)으로 ‘갤러리 안에 사람을 더한다’는 중의적인 해석을 달았다.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갤러리가 되겠다’는 뜻이다. 청년작가들을 위한 갤러리를 짓는다는 소식에 지인들은 ‘진작 하지 그랬냐’며 더 반겼다.
다른 용도로 사용시는 대관료를 받는다. 하지만 어떤 팀들인지 상황을 알면 그마저도 다 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할 거 같다. 그렇다고 허접하게 갤러리를 짓고 싶진 않았다. 미적 감각도 필요했고 건축과 마감에 대한 전문지식도 필요했다.
사실 창업은 청년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김 대표의 나이가 어린 것을 알게 된 어른들은 하대하기 일쑤였다. 금융권에서 목돈을 대출받긴 더 어려웠다.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 당연히 있었다. ‘어린놈이 이런 걸 한다고?’ ‘이 동네서 갤러리가 되겠어?’라는 의문도 함께 받았다.
나이 들어 보이려고 일부러 수염을 길렀다. 갤러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까다롭게 굴어야 했다. 조명 하나, 바닥 색 하나도 극미한 차이를 발견하고 고르고 또 골랐다. 필요한 건 더 많이 알아봤고 공부했다. 공사 관계자들이 쓰는 전문용어도 두루두루 꿰었다. 정확히 알고 요구하자 기성세대들의 관행적인 타박도 줄어들었다.
천안 원도심이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길…
거창한 사업을 하겠다고 부모에게 손을 벌릴 만도 한데 김 대표는 오히려 “알아서 해낼 테니 내게 한 푼도 주지마라, 단 이 일을 할 수 있게 허락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기꺼이 허락했고 ‘하는데 까지 해보라’며 격려해주었다.
지금까지 모은 저축을 털고 김 대표가 천안시가 주최한 청년활동공간조성사업에 공모해 선정되면서 자금에 숨통이 트였다. 그래도 은행 빚은 생겼다.
예전과 다르게 잠자기가 쉽지 않았다. 24살에 빚이 몇 천만 원이나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성공을 예감한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천안역 CGV에서 영화 보고 갤러리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청년창업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는 풍경, 유흥문화보다 더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동네 아닌가요?”
나이보다 당찬 그의 소신에 청년사업가 강의요청이 들어온다. 벌써부터 작품 전시문의도 이어진다. 대관문의도 심심찮다.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펼치는 ‘우리 동네 버스킹’ 공연 본선을 인 더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김 대표는 연말자선콘서트도 생각하고 있다. 갤러리를 만들기 위해 수고했던 모든 지인들을 초대해 기부콘서트를 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돈 버는 것이 삐딱한 시선을 받지 않고 ‘쟨 돈 더 벌어도 돼’라는 인식을 받을 만큼 정당하게 사업해서 베풀고 싶어요. 청년을 위해 청년이 함께 만든 공간에서요.”
대관 및 전시 문의 : 010-4245-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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