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누구나 처음 만나면 어색함이 맴돌기 마련인데 오가는 이야기가 깊었거든요. <동갑내기 울엄마>라는 그림책으로 첫 모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속내를 털어놓으며 울먹인 회원도 있었고 서로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더군요. 그래서 이 모임이 서로에게 의미를 갖고 잘 진행되리라는 걸 알았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처음 만남을 회상하며 북카페 산새 오수연 대표가 말했다.
북카페 산새에서는 지난 5월부터 매주 ‘책 읽는 엄마 화요모임’이 진행됐다. 엄마들이 모여 함께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최근 들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책읽기 모임의 한 모습이다. 하지만 한 걸음 들어가 보면 조금 다른 부분이 보인다. 구성원은 우리가 흔히 미혼모라 부르는 엄마들. 책 읽는 엄마 화요모임은 천안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미혼모 지원사업 중 하나로 진행된 독서모임이다.
상처로 닫힌 마음, 책 매개로 열린 시간
책 읽는 엄마 화요모임의 계기는 우연했다. 천안시건강가정지원센터 송지윤 팀장이 미혼모 지원사업을 진행하던 차에 미혼모를 위한 취·창업 지원과 관련한 역량강화 및 준비과정을 위해 북카페 산새에 견학차 방문했다가 오수연 산새지기와 책읽기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부터다. “그동안 해온 지원사업의 경우 비즈 만들기나 요리교실 등 일회성으로 진행된 것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좀 더 미혼모들에게 힘이 되고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서나갈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차였죠.”
송 팀장은 이날 만남을 통해 북카페 산새와 함께 책 읽기 모임을 계획해나갔다. 오수연 산새지기가 책 읽기 모임에 함께해줄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실행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모임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혼모들은 상황이 저마다 너무 달랐다. 연령, 교육수준, 경제상황까지도 어느 하나 통일된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도 컸다. 어린 시절부터 외롭게 자란 사람이 많았고,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얻은 상처로 마음을 닫아 이제는 아예 상처를 받기 전에 미리 방어부터 하는 엄마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림책 읽기였다고. 북카페 산새 오수연 산새지기는 “너무 어렵게 접근하기보다 책을 매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쉽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방식을 고민했다”며 “마침 북카페 산새에서 ‘그림책으로 철학하기’ 책모임이 진행되고 있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쉽게, 동시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며 차오른 용기
그렇게 출발한 모임. 정작 엄마들의 반응은 생각 이상이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곁을 내주었는가 하면, 바쁜 속에서도 모임에 반드시 참여하려는 열정을 보였다. 아이를 업고 안으며 매주 한 번씩 모여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서 개인으로만 섰던 이들은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서며 함께 공간을 만들어갔다.
호응 속에 모임은 2기까지 진행되었다. 1기는 5월부터, 그리고 2기는 9월부터 진행해 각각 8회기씩 열여섯 번의 모임을 마쳤다. 그동안 2기 모임에 모두 계속 참여한 회원이 있는가 하면, 1기와 2기 모임 중간 잠시 쉬는 동안에도 스스로 모임을 이어가며 만남을 계속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화)에는 2기의 마지막 모임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엄마들은 계속 만나며 인연을 끈끈히 이어갈 것임을 이야기했다.
책모임을 통해 이들은 든든한 내 편이 생겼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드러내어놓지 못해 숨기다보니 혼자 감당해야 했던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게 되며 얻게 되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위축되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했음을 생각하게 되며 나설 용기를 얻기도 한다. 2기 책모임에 참여한 방아름(26)씨는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모임을 하다 보니 다양한 생각과 삶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참 좋았다”며 “같은 상황에 있는 엄마들끼리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책모임 말고도 따로 만나며 시간을 보낼 만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송지윤 팀장은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단단해지는 엄마들을 보며 책모임 진행이 정말 의미 있음을 실감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이를 통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면 다른 지역서도 받아들이도록 제안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송 팀장은 “북카페 산새라는 공간이 지역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지역 네트워크의 힘을 실감했다”며 “지역과 협력해 가능하다면 책모임을 더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당당한 개인, 그리고 건강한 엄마
무엇보다 이들은 책모임을 통해 스스로 당당해짐은 물론, 건강한 엄마로 설 수 있는 배경도 갖게 됐다. 주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이 오롯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경우 북카페 산새에서 만나는 선배 엄마들을 통해, 책모임을 진행하는 오수연 산새지기를 통해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 궁금증과 고민을 나눌 수 있기 때문. 그 안에서 외로웠던 육아의 부담을 덜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깨닫는 계기를 갖게 된다고. “혼자 아이를 기른다고 굳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건 없어요. 엄마들도 위축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을 뿐 이들은 자신과 아이에 책임을 다하는 건강한 엄마들이니까요. 미혼모라는 명칭도 굳이 필요할까요? 그저 엄마들인 걸요.” 오수연 산새지기의 설명.
그래서 이들 모임의 이름은 책 읽는 엄마 화요모임. 3기 모임은 내년 또 새롭게 시작한다.
사진제공 : 천안시건강가정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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