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 해드릴까요? 다음에 만나면 못 받으실 수도 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잦아들자 곧바로 또 한 마디가 다가선다. “여름 내내 우리 이러고 놀았어요. 배우 놀이, 감독 놀이, 연출 놀이…, 그렇게 영화 놀이를 했어요.”
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기대, 약간의 걱정과 아쉬움 등 여러 표정이 교차했다. 물론, 표정의 중심은 당연히 즐거움이었다. 동아리 베리타스는 올 여름 영화와 함께 뜨겁게, 동시에 즐겁게 계절을 보냈다.
겁 없이 시작한 영화 제작, 모두 즐거운 추억
여성들이 모여 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아줌마들이 모여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저 일상을 담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인 동시에 시나리오, 배우, 감독, 촬영, 편집까지 모두 자신들 손으로 직접 한다고 했다.
이미 촬영은 끝나고 편집 등 후반작업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있어 이제 누구나 영화제작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전문가의 엄중한 분위기가 먼저 다가오는 영역인 영화를, 그것도 시나리오까지 직접 썼다니 놀라울 수밖에.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자 영화를 찍으려 했을까. 솜사탕처럼 부풀어가는 궁금증 앞에 이유는 오히려 간단했다.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 비채에서 올 봄에 마을미디어 공모사업을 진행했어요. 지원에 선정되면 전문강사가 영상 제작에 관한 교육을 하고 실제 제작에 들어갈 경우 제작지원도 해주는 내용이죠. 그래서 영상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 지원했는데 덜컥 선정됐어요. 그래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직접 영화를 찍기까지 이른 거예요.” 이호금(53 천안시 동남구 성황동)씨가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것만은 아니었다. 마음 한 구석엔 전문가만이 미디어를 다룰 수 있다는 걸 깨고 싶다는 소곤거림이 있었다. 평범한 아줌마들이 뭉쳐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삶을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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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제작하며 알게 된 세계, 그리고 재미
자신들만의 극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용기를 내기까지 김경희(52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씨의 역할도 자못 크다. 현재 베리타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희씨는 소설을 창작하고 있어 그 텍스트를 기반으로 시나리오에 대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제작한 영화 <선인장을 죽이다>는 김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김경희씨는 동시에 배우로 참여해 연기까지 경험했다.
기획단계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준비했지만, 막상 영화를 제작하면서는 답답한 마음도 컸다고. “아무래도 글과 영상의 간격이 있으니 생각하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이 생길 때가 있더라고요. 전문 배우가 아니다 보니 마음대로 연기도 안 되고….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 과정을 서로 이야기하며 해소하고, 때론 양보하고 배려하며 길을 잡아갔다. 그리고 결국 촬영을 다 마친 지금의 소감은 정말 재미있는 시간. 그 하나로 남는다.
이제 촬영을 다 끝나고 편집에 들어간 때. 회원들은 순간순간이 아쉽다. 촬영을 맡았던 전미숙(52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씨는 “편집을 하려고 보니 왜 촬영할 때는 몰랐을까 싶은 순간이 많아서 아쉽고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었고 즐겁게 해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혼자라면 아마 이렇게까지 해내지 못했겠죠”
영화와 베리타스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인문학 동아리로 출발한 베리타스는 해마다 주제를 달리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첫해 철학, 2년째는 니체를 함께 공부하다 3년째 주제를 영화로 잡아 영화를 보고 토론하며 1년을 보냈다. 그때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 비채와 교류를 시작해 2013년부터 천안여성영화제에 시민기획단으로 참여했고, 지난해와 올해는 아예 베리타스 주최로 천안여성인권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22일~25일 진행하는 올해 천안여성영화제에도 네 명의 회원이 시민기획단으로 참여, 기획에서 진행까지 보다 직접적으로 함께한다. 그리고 이번 영화 제작에까지 이르며 인연은 깊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인연은 계속 이어질 예정. 회원들은 이번에 배우고 직접 제작까지 경험한 마을미디어의 가능성을 잘 활용하고자 한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마을미디어가 굉장히 활발한데, 천안은 이제 막 움트고 있어요. 아무래도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면 그 안에서 이야기를 담아내는 마을미디어의 역할도 점점 커지겠죠. 지속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방안이 마을미디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꼭 영상이 아니더라도 팟캐스트나 마을신문 등 매체는 다양하니까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그리고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
실제 영화에는 익숙한 천안의 곳곳이 속속 눈에 띈다. 내가 사는 곳이 담긴 영상은 반가움부터 와락 안겨와 친근하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그들의 삶은 유쾌하다. 촬영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던졌던 “정말 재밌게 사시네요”란 말은 딱 지금의 그들에게 어울리는 말. 베리타스 회원들은 혼자였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 일을 함께, 즐겁게 찾아가고 있다.
무던히도 뜨거웠던 2016년 여름. 베리타스 회원들은 카메라 속에서 살았다. 카메라에 무엇을 담을지, 그리고 표현할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며 동선을 잡고 시선을 처리했다.
그 뜨거웠던 여름은 10월 19일 있을 마을영상대전에서 사람들에게 소개된다. 친근한 우리 이웃 아줌마들, 그들 삶속의 뜨거운 한 순간은 십분 남짓한 영화 프레임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사진제공 :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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