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연휴가 모처럼 길다. 주말과 일요일까지 합해 장장 5일의 휴식이 기다린다.
고향 오가느라, 여기저기 인사 다니느라 몸과 마음이 방전된다 해도 나만을 위한 하루쯤을 빼놓을 수 있는 연휴. 몸과 마음 다 풀어헤치고 늘어져 있기보다는 자체충전을 하면 개운한 마음으로 또 새로운 시간을 맞을 수 있다. 느슨한 마음으로 만나는 책 한 권, 그리고 영화 한 편은 그래서 반갑다.
제안1. 남궁윤선 리포터가 추천하는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추석연휴에 길게 드러누워 읽을 책 하나 정도 필요하다. 가족을 만나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인터넷 검색에 열중하다가도 오롯이 나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조용한 곳에서 책을 펼친다. 동네 도서관에서 모두 구할 수 있는 책이다. 가을의 초입, 은행나무터널을 걷다가 송곡도서관에 들러도 참 근사하겠다.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 백영옥 저/arte
소설가인 저자는 빨강머리 앤의 말을 인용하며 소설가를 꿈꾸던 자신이 절망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는다. 책의 곳곳에는 빨강머리 앤 일러스트와 삶의 경구와 같은 빨강머리 앤의 말이 담겨있어 책이 술술 넘어간다. 여기저기 밑줄을 긋거나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전송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다 궁금한 점. 어렸을 때 애니매이션으로 책으로 빨강머리 앤을 만나면서 이 주옥같은 말들을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좋아했던 것일까 하는 것이다.
* 앞뒤전후가 모두 막혀 버린 것 같은데 날마다 설상가상의 상황을 만나는 그대에게 권합니다
-. 욕망해도 괜찮아 - 김두식 저/창비
법학자이자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저자는 집 회사 교회를 오가는 모범생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선을 넘어본 적이 없다는 저자는 훌쩍 선을 넘는 일 대신 경계를 조금씩 늘이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 멘토와 꼰대의 차이 등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의 다른 책, ‘불편해도 괜찮아’를 찾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그대에게 권합니다.
-. 딸에게 주는 레시피 - 공지영 저/한겨레출판
소설가인 작가가 딸에게 주는 요리책. 엄마가 가르쳐주는 요리는 주린 배를 채울 뿐 아니라 허기진 마음까지 그득해지게 한다. 까다로운 재료나 복잡한 조리과정, 실체를 알 수 없는 손맛이나 계량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가 이어진다. 우리 엄마는 왜 이렇지 않았는가를 개탄하기 이전에 딸에게 이런 엄마가 되고 싶다. 담담하면서 지혜로운, 따뜻하지만 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언제나 달려가 안길 수 있고 생각만 해도 좋은 엄마!
* 명절이어도 이제 더 이상 엄마 밥상을 받을 수 없고 그저 엄마가 그립기만 한 그대에게 권합니다.
제안2. 김나영 리포터가 추천하는 ‘당신을 위한 영화 한 편’
명절 연휴는 모처럼 가족이 함께 극장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하지만 다들 같은 마음일 터라 번잡스러움에 오히려 휴식이 아니기 쉽다. 최근에는 TV채널을 통해서도 마음에 드는 영화를 선택할 수 있으니, 가벼운 간식거리 준비해 거실을 영화관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 이럴 때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보는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가 제격이다.
-. 굿 윌 헌팅 - 1997년 작. 구스 반 산트 감독. 맷데이먼, 로빈 윌리엄스 주연.
최근 CGV에서 재개봉으로 다시 한 번 만났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전혀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과 그로 인해 마음의 벽을 허무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내가 움켜쥐었던 벽돌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무엇보다 “네 잘못이 아니야” 한 마디….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 말은 나에게도 다가온다. 젊은 맷 데이먼을 볼 수 있어, 그리고 늘 그리운 로빈 윌리엄스의 따뜻한 시선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 스텝맘 - 1998년 작.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줄리아 로버츠, 수잔 서랜든 주연.
처음에는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긴 줄 알았다. 실을 따라 흘러가는 반지 프로포즈 장면으로 먼저 알게 된 영화라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이토록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라니. 영화 스텝맘에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한다. 모성애와 자매애, 그를 넘어선 인류애까지 등장하며 마음을 울린다. 단절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사랑과 교감이 어디까지 가능해질 수 있는지 곰곰이 되뇌게 하는 그녀들이 있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다.
-. 미라클 벨리에 - 2014년 작. 에릭 라티고 감독. 까랭 비야 루안 에머라 주연.
청각장애인 부모와 남동생이 있다. 그 소녀는 비장애인. 더욱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다. 그들 가족에게 벨리에의 고운 음성은 오히려 비극. 가족은 벨리에를 언제까지나 품에 머물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아이일 수 없고 언젠가 부모의 품을 벗어나 더 크게 날아가야 하는 법. 장애인의 삶이 충분히 행복한 그들을 보며 부모와 자식의 온전한 유대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했던, 그 속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에 넋을 놓게 되는 행복한 시간이다.
천안아산내일신문 취재팀 mynaei@nae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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