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물>을 볼 때의 느낌이 묘하게 겹쳐지는 영화다. 20대 남자들의 풋풋하지만 찌질해 보이는 행동들이 쉴 새 없이 관객들을 웃겼던 영화 <스물>. 40대 남자 셋이 보이니 이번엔 웃음뿐만 아니라 묘하게 ‘짠내’까지 풍긴다. 13년 동안 좁은 고시원을 떠나보지 못한 남자(박희순), 명퇴 1순위 싱글남(신하균), 암 선고를 받아 직장에 사표를 던진 가장(오만석), 이들이 영화 <올레>의 주인공 3인방이다.
희망과 미래를 얘기하기에는 세상을 너무 많이 겪어버린 세 사람. 꼬질꼬질하고, 찌질하고, 애처롭기까지 한 중년의 어느 날, 대학 선배 부친의 부고 소식을 듣고 제주도를 찾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문상을 미루는 세 사람. 호텔에 빈 방이 없어 찾게 된 게스트하우스에서 풋풋한 청춘들과 마주한 세 사람은 아련한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후 부끄러움은 관객의 몫으로 던져버린 듯 즐겁게 제주도를 즐기는 세 사람. 대체 문상은 언제쯤 가려고 그러는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지만 진상 짓을 벌이는 사이사이 현실의 고민은 예고 없이 울컥 치민다. 사법고시 폐지를 맞은 고시생(박휘순)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살을 꿈꾸고, 여행 도중 해고장을 받은 남자(신하균)은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울부짓는다. 서울에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남자(오만석)도 있다.
연기파 배우 셋이 뭉쳤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얼마 전 TV드라마 <실종느와르M>에서 20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을 연기했던 박희순은 역대급 민폐 캐릭터 수탁을 연기하고, 영화 <빅매치>에서 스포츠 도박사의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주었던 신하균은 아침마다 세탁망 안에서 입었던 와이셔츠를 찾아 입는 아주 현실적인 직장인 중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예능, 드라마, 뮤지컬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회무진 열연하는 오만석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다 문드러진 방송국 아나운서 은동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일상에 지친 중년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낸 영화 <올레>. 그래도 영화 속 주인공들은 행복해 보인다. 짧은 여행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도 얻고, 역경을 이겨낼 각오도 다지고, 새 출발에 대한 의지와 인연도 만들었으니 말이다. 도심에 있는 우리는 그저 영화를 보며 대리 힐링 할 수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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