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을 이야기합니다 -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진경아씨]

길 위에서 만나는, 고통을 상쇄시키는 감사와 기쁨

남궁윤선 리포터 2016-08-24

                                                   순례자 진경아씨


진경아씨는 5월 23일부터 7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하루 평균 27Km를 걷는 순례길의 여정을 매일매일 SNS에 올리며 다른 사람에게 함께 걷기를 제안했다. 한 걸음에 천 원, 백 걸음에 십만 원의 모금을 통해 ‘진경아와 함께 걷는 희망여행’을 진행했고 총 1200여만 원을 모았다. 모금액은 풀뿌리희망재단에 전해졌고, 방임 학대 폭력으로 마음을 다친 지역 아동들의 치료를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순례길의 여정이 시작되는 생장의 새벽


-.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9년 전쯤 수녀님과 은퇴한 목사님이 동행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주로 영적 통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당시 무교였던 나도 참 인상적으로 읽었다. 후에 남편과 ‘결혼 20주년 여행’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대략 40여 일이 소요된다. 올해 1년간 쉴 작정으로 일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레 산티아고 순례를 떠올리게 되었다(진경아씨는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 오래도록 걷는 일이다. 어떻게 준비했나

2009년부터 남편과 제주도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매년 5~7일, 15~18Km를 걸었다. 걷기 시작하고 이틀째가 되면 몸이 엉망진창이 된다. 갑자기 몸을 쓰기 때문에 이곳저곳이 아프다. 근육염이 생기거나 발이 붓고 물집이 잡히는 등 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몸은 길 위에 있어도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에 골몰하거나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3일 정도 지나면 단련이 되고 4~5일이 지나면 생각이 후퇴하면서 단순히 걷는 동작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맞게 된다. 내 자신이 온전히 비어있는 상태를 경험한다. 남편과 같이 걷지만 혼자 걷고, 혼자 걷지만 같이 걷는 그 길이 한 달 넘게 된다면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됐다. 


                                                                                                                                                       길 위의 돌십자가


-. 순례길 모금활동은 어떻게 기획되었나?

산티아고행을 결정하고 준비하다가 불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만 좋은 경험을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다른 사람들과 뭔가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기기는 하겠지만 더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모금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좋은 의견’이라고 격려했다. SNS를 통한 모금은 처음이라 한 500만 원 정도 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금의 주제를 저소득 아동청소년의 심리정서 치유로 정한 것은 아이들이 견디기 힘든 고통과 상처를 당했더라도 그 아픔이 나머지 삶까지 잡아먹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모금 덕분에 고된 순례길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공적인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다. 걸으며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핸드폰에 녹음을 해가며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모금액도 예상을 훌쩍 뛰어 넘은 액수라 감사할 따름이었다.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 순례길 일정은 어땠나

여정은 40일, 프랑스 파리에서 생장을 거쳐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800Km의 길을 걷는 일정이었다. 순례자들은 자기가 걸을 수 있는 양을 결정하여 도착지로 숙소를 정하고 길을 나선다.
순례길은 보통 오전 5~6시 사이에 시작돼 오후 1~2시경에 숙소에 드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순례자들은 숙소에서 몸을 씻거나 빨래 식사 등을 해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먹고 자고 걷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어떤 통찰이 섬광처럼 스치곤 했다. 오랫동안 몸보다 머리 쓰는 일에 익숙한 생활을 했던 터라 매 순간 예기치 못한 고통을 만나지만 그 고독한 순간에도 아름다운 풍광이 주는 위로를 받았다.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또 생면부지의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고 서로 돌보고 돕고 연대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 어려운 일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하루 한 두 끼 정도의 식사, 더운 날씨, 불편한 잠자리(심지어 한 방에 80명까지 들어가는 숙소도 있었다!) 등은 순례를 결정한 순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움은 늘 내 욕심에서 싹튼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어느 날 10시간 동안 40Km를 걷는 일정을 소화해 냈다. 분명 몸에 무리가 왔고 다음 날은 거리를 줄이고 쉬어주는 것이 상식적인 일인데 한편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40Km도 걸을 수 있군!’ 그래서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욕심껏 걸었고 이내 다리에 이상이 생겨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때 나 자신의 내부적 목표를 이루려는 강박, 목표지향적 삶의 태도, 자기고집 등과 직면하게 되었다. 내 욕심이 자초한 일이었다. 순례길에서 짧은 시간에 극명하게 자신이 드러나고 그 결과가 오롯이 몸으로 나타난다. 도리 없이 나와 마주치는 순간마다 부끄러웠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어려움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


-. 산티아고 순례길을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걸을 수만 있다면 한 번쯤 그 길에 서보라고 말할 것 같다. 실제로 80세 노인부터 초등학생까지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순례자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나이에 그런 시간을 갖는다면 또래의 다른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을 하고 생각을 넓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평소에 걷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하루에 10Km 정도를 걷거나 배낭을 메고 걷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 된다. 생존에 꼭 필요한 물품인 침낭 비옷 등만 챙겨도 6~7Kg의 배낭을 지고 걷다 보면 어깨 통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 진경아씨의 유쾌하고 생생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http://blog.naver.com/ch_hopefund와  www.facebook.com/kyungah.jin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제공 : 진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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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윤선 리포터 ako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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