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이야기, 열 받는 이야기

지역내일 2016-08-24


냉방병을 앓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 이후 나는 에어컨이 들어오는 장소에 갈 때는 꼭 긴팔 옷을 하나씩 챙겨 다닙니다. 기차를 탈 때나 식당에 갈 때, 그리고 강의를 할 때나 극장에 갈 때 그렇습니다. 집에서는 에어컨을 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여름을 나기가 여간 힘들지 않네요. 이 원고를 쓰는 지금 시각이 새벽 3시입니다.


어제 오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누워서 쉬다가 조금 잠을 잤습니다. 밤에 문을 열어놓고 자다가도 이 시간에는 찬바람이 들어와 문을 닫게 되지만, 올 여름에는 아침까지 창문을 열고 자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연 조건이 어려운 기간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생활 뉴스는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짜증나고 열 받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연히 가입한 미술 동아리 밴드에는 매일 시원한 그림들과 좋은 해설들이 여러 개씩 올라옵니다. 나에게는 큰 즐거움과 위로를 주고 있네요. 그런가하면 올 여름에도 예외 없이 국가기관이나 사회 상층부에서 저지른 사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부는 경북 성주 군민들을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절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사건은 온 국민을 경악케 하였고, 현직 부장판사의 성매매 현장 발각 또한 거의 유사한 충격이었습니다. 발암물질 함유로 문제가 된 학교 우레탄 운동장을 방치한 채 예산 배정을 거부하고 있는 당국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요. 가진 자들의 비리나 횡포는 결정적으로 우리의 정신건강에 타격을 가해옵니다. 어떻게 그들의 재산은 단기간에 수십억 원씩이나 증가하는지, 왜 그들의 불법은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고 있는지 정의를 갈망하는 시민들은 속이 터집니다.


미국 대통령 후보 트럼프의 막말 시리즈도 우리를 짜증나게 합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 후보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직접 관련되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도 없습니다. 그 사람처럼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여럿 있어서 더욱 안타깝지요.


메르스, 지카바이러스 등 전염성 질병의 침입 소식이 없어서 금년 여름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올림픽을 연기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고 했었는데, 다행히 올림픽이 순조롭게 열리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협약을 최초로 맺어 기후 재앙에 대한 국제적인 대응을 시작했던 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환경을 강조하면서 경기를 시작한 일도 의미가 컸습니다. 경기 결과가 나올 때마다 전해오는 미담과 전설들이 이 여름 막바지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해주기를 기원합니다.


아파트지만 우리 집은 문을 다 열어 놓으면 앞뒤로 바람이 잘 통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바람 통로에 앉아 있어도 별로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마치 데자뷰처럼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네요.


고3 여름방학에 고향집으로 내려가 혼자서 입시준비를 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시원한 곳을 찾아갔습니다. 향교 뒤쪽 대나무 숲이 있는 곳에 나무 책상과 걸상을 놓고 책을 읽었습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50년이 지났어도 어제 일 같이 생생하네요. 그러고 보니 그 시절에도 시골 부자 늙은이가 소녀 성추행으로 손가락질을 당했었네요.


홍성에서 발행하는 마실통신을 메일로 받아봅니다. 농민들과 시골 마을에서는 이 더운 여름을 어떻게 났을까요? 소식지에는 인간적인 얘기들이 여럿 실렸습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에어컨을 켠 사무국장이 전기요금 걱정하는 이야기, 동네 식당 아주머니가 대단한 슬로우 푸드 요리 전문가로 식생활을 넘어 농촌공동체를 살려갈 생명철학을 말씀하는 인터뷰도 있네요. 역시 미래의 희망은 오래 전부터 시골 마을에 내재돼 있었나 봅니다.


국민들이 기적처럼 만들어 준 20대 국회가 어떻든 국민의 뜻을 받들어 활동해주리라는 믿음이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김영란법이 드디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투명사회로 진입하게 되기를 바라고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온 가족이 힘겹게 여름을 넘기더라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자녀들을 생각하며 보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김의수(전북대 명예교수. 독일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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