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강남 청담동 명품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프랑스의 유명 보석·시계 브랜드인 까르띠에가 ‘까르띠에 메종 청담’을 새롭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2008년, 까르띠에는 서울 강남의 청담동에 아시아 최초로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그리고 지난해 영업을 일시 중단한 채 1년여의 리뉴얼 공사를 거쳐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한국의 정취가 곳곳마다 배어있는 그곳을 찾아가봤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15개국 왕실이 사랑한 브랜드 ''까르띠에''
까르띠에는 1847년 ‘루이 프랑수와 까르띠에''가 프랑스 파리에서 문을 열었으니 무려 169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주로 유럽 왕실과 유명 인사들에게 보석을 팔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결정적 계기는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왕의 보석상으로 임명하고 나서부터다.
그는 1902년 왕위에 오르자 까르띠에가 런던에 부티크를 내도록 권유했고, 2년 후 왕의 보석상으로 임명하면서 무려 27개의 왕관을 주문했다. 그리고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상이자 보석상의 왕’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그리스, 벨기에, 모나코 등 15개의 왕실에서도 잇달아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상으로 임명했다.
보석으로 이름을 떨치던 까르띠에가 손목시계로서도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04년 브라질의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두몬트는 친구인 루이 까르띠에에게 그 당시 보편화됐던 회중시계(포켓워치)가 비행 중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에 까르띠에는 납작한 사각형 모양의 손목시계를 개발했다. 까르띠에 최초의 남성 손목시계 ''산토스(Santos)''는 이렇게 탄생되었고, 시계 분야에서 까르띠에의 명성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옥의 정서가 물씬 느껴지는 건물 외관
새로 단장한 ‘까르띠에 메종 청담''은 파리·뉴욕 등 세계 어느 곳의 명품 매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까르띠에는 단독 매장을 임대하거나 지을 때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과 해당 국가의 개성을 함께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총 4개 층의 청담 매장은 한옥의 정서가 느껴지는 외관과 프랑스 대저택의 건축 양식으로 꾸며진 실내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됐다.
한옥의 처마와 문살에서 영감을 얻은 외관, 1층 입구에 위치한 기와지붕 형태의 디딤돌, 한국 전통문양과 자개 그리고 한지로 꾸민 VIP룸, 1층 뒤뜰과 3층 테라스를 둘러싼 한옥 문살 장식 등 매장 곳곳에서 한국적인 정취가 묻어난다. 특히 VIP 케이터링에서 제공하는 고급 전통차와 다과는 청담 매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색다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명품 쇼핑의 공간이자 사교와 휴식의 장소
매장 입구에 들어서면 2층에서부터 1층까지 뻗어 내려오는 대형 샹들리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럽의 성이나 대저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1층에서는 까르띠에의 보석 전 제품과 함께 VIP 룸과 연결된 정원을 만날 수 있다. 2층은 까르띠에의 시계 컬렉션을 둘러볼 수 있으며 3층은 VIP 고객들을 위한 프라이비트 살롱으로 구성했다.
까르띠에의 한 관계자는 “메종 청담에 새롭게 마련된 프라이비트 살롱은 VIP 고객들의 휴식처와 사교의 장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지하 1층에 차를 맡긴 후 매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가 한국 시장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까르띠에의 관계자인 조모씨는 “지난 10년간 한국은 아시아 문화의 중추가 되었고 중국과 일본, 태국 등에서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면서 “K팝, K드라마, K뷰티 붐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품업체들이 서울에서 각종 행사를 앞 다퉈 개최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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