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調香)이란 문자 그래도 ‘향을 조합하는 것’을 뜻한다. 아직까지 향을 조합한다는 개념이 일반인에게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는 다양한 향료 및 조향 전문 교육기관과 프로그램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수가 극히 적을뿐더러 비용도 만만치 않다. ‘향기’에 대한 열정으로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분당의 한 전문 향료공방에서 조향 공부를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오감 중 유독 후각에 집중하는 이유
분당 구미동, 전문 향료공방에서는 몇몇 이들이 주말의 쉼을 포기하고 모여 향이 나는 제품에 들어가는 향의 원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서로 맡은 향에 대해 생각을 나누며 향기에 대한 서적도 찾아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공부한다. 흔히 오감이라 일컫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중에서 후각에 집중하고 훈련시키는 일이 다소 생소하다.
“초등학생 때, 6살 위의 언니가 입었던 니트에서 너무 좋은 향기가 나는 거예요. 그 향기가 머릿속에 저장된 채, 자라면서 ‘좋은 향기’를 기억하는 것을 즐겨하게 되었어요. 향수 미니어처를 모으면서 다양한 향기를 수집하다가 결국 전공도 향수를 만들고 싶어 화학공학과에 진학했고 현재는 외국 향료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혜림(용인 김량장동·28)씨는 어린 시절 ‘향기’와 맺은 인연이 지금의 삶까지 연결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부터 매주 서울에서 분당까지 2시간 동안 조향 공부를 하기 위해 왕복 두시간이 넘게 오고 있다는 박지선(36)씨도 현재 화장품 원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조향 및 향료 관련 시장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 역시 좀 더 전문적인 향 공부를 하면서 두 번째 인생을 준비 중에 있어요.”
어려운 향기 암기, 함께하니 도움 돼
이들이 모이는 향료 공방에는 개인이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관능용 향료를 포함한 200여 가지 향료를 구비하고 있다.
“향과 관련된 책을 선정해서 돌아가며 읽고 책에 나온 향수들을 시향하고 향수에 들어간 향료에 대해 논의합니다. 향 노트별로 원료를 시향해 보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기도 하지요. 향이라는 것이 혼자 맡아서 기억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같은 향을 맡고 서로의 느낌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이 특정 향에 대한 기억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모임의 리더인 김가영(분당 구미동·29)씨는 이렇게 말하며 향을 시향하는 얇고 기다란 종이에 티 트리, 레몬그라스, 바질, 캐머마일 등의 향 원료를 떨어뜨렸다. 서로 어떤 것인지 신중하게 냄새를 맡으며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우리가 흔히 허브차로 마셨던 캐머마일 향 원료의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갸우뚱 하던 회원들은 오래된 섬유에서 나는 냄새가 연상된다며 맛과 향은 정말 다르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다음 모임에서는 아예 허브티를 마셔보며 향을 외워보자는 이야기, 중국어에 성조가 있듯이 향에도 강도가 있으니 그 강도를 3, 4등급으로 나눠서 외워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리포터에게 생소하기만 한 향에 대한 공부는 깊이를 더했다.
서로의 꿈을 찾아 가는 여정
사실 이 모임의 시작은 지난 4월, 8명이 함께였다. 향수를 좋아하는 여대생부터 30대 중반의 직장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모임이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꾸준히 모이는 이들은 4명, 공방이 있는 분당까지 서울에서 토요일의 달콤한 휴식을 포기하고 오는 직장인 회원이 그중 2명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이른 아침부터 나서서 조향 공부를 하러 오는 김현영(36)씨는 현재 아로마용품 판매를 하는 사업자로 본인의 향을 만들어 자체 브랜드를 갖는 것이 꿈이란다.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인 ‘후각 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공부 시간 내내 두 눈을 반짝이며 온갖 신경을 코에 집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열심히 필기하고 암기하는 모습에 많은 생각이 오간다.
사실 ‘여름철 향수 사용이 급증함에 따른 궁금증’, ‘최근 불거진 화학제품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 ‘향후 향기 산업에 대한 전망’, ‘후각을 활용한 뇌 연구 및 집중력을 키워주는 향’ 등 여러 가지 질문들을 준비해 갔다. 그러나 취재 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하는 것보다 젊은이들의 꿈에 대한 열정,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에 대해 전달하기로 기사 방향을 바꾸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