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반찬 싫어요, 고기반찬 주세요!

지역내일 2016-06-30

“점심 메뉴 중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해보세요.”
남학생: 고기반찬이면 다 좋아요. 싫은 거요? 나물이요.
여학생: 부드러운 고기반찬, 스파게티, 샐러드가 좋아요. 나물과 생선은 싫어요.


급식 반찬에서 갈비찜이 조금이라도 질기다 싶으면 여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고기반찬이어서 무조건 좋다. 갈비찜에 가래떡이 섞여 나오면 남학생 상당수는 고기의 양이 줄었기에 싫어한다. 생선튀김이 나오면 남학생은 고기반찬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학생은 냄새를 이유로 꺼린다. 남녀 모두 스파게티나 샐러드를 좋아하지만, 된장국이나 채소반찬, 특히 나물은 싫어한다. 여학생이 나물을 좋아할 것이라는 예측은 학교급식에서는 빗나간다.


요즘 학생들의 점심시간과 선생님들의 점심시간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같은 메뉴의 점심을 먹는데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어진 음식을 보고 가끔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서히 제자들의 입맛에 길들여지고, 제자들이 먹는 음식을 점검한다는 측면도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드신다.
15곡 밥⑤, 쑥갓우동국⑤⑥⑬, 오징어 오이초무침⑤⑥⑬, 마카로니샐러드①②⑤⑥⑩⑫⑬, 배추김치⑨⑬, 피자치즈 롤 가스&돈가스소스①②⑤⑥⑫⑬, 유산균음료②, 1,009㎉
오늘 점심 메뉴이다. 고기반찬과 샐러드가 들어있으니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가 좋아하겠다. 남학생과 여학생을 함께 고려한 메뉴로 보인다. 선생님들도 오징어 오이초무침이 있어 행복하다.
각 메뉴 뒤에 열거된 숫자는 알레르기 정보이다. 피자치즈 롤가스&돈가스소스는 ①난류(가금류), ②우유, ⑤대두, ⑥밀, ⑫토마토, ⑬아황산염의 여섯 가지 알레르기 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 알레르기 정보를 무시하고 저녁을 먹은 학생이 응급실로 실려 가는 일이 발생한 뒤로는 이 정보를 꼭 확인하도록 한다. 
도시락 세대인 나는 요즘 학교 급식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돼 버린 70년대 점심시간 교실 풍경은 이랬다.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는 도시락이 가득 쌓여 있었고 도시락 당번은 위아래 위치를 바꾸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도시락 반찬이 익어가는 냄새에 4교시 수업은 차라리 고문에 가까웠다. 종이 울리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삼삼오오 책상을 붙이고 정겹게 반찬을 나누어 먹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친구가 숟가락 하나를 들고 슬그머니 끼어들어도 웃으면서 나누어 먹는 넉넉함이 있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여중, 여고와 같은 교정을 쓰기 때문에 학교 식당에서는 매일 3개교 학생과 선생님까지 3400여 명의 점심을 준비한다. 하루 최대 쌀 280㎏(20㎏으로 포장된 쌀 140포대), 고기 600㎏ 등 가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식재료를 소비한다. 세 분의 영양사 선생님이 25명의 조리사와 40여 명의 배식원을 지휘해서 점심을 준비하고 배식하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집밥만큼 맛있는 학교 밥, 그 밥을 위해 애쓰는 많은 분들께 감사
매일 아침 7시, 학부모 두 분과 선생님, 학교 관계자, 영양사가 납품받은 식재료의 신선도와 유효기간, 품질상태 등을 꼼꼼하게 검수한다. 요즘 아이들은 조리된 음식에서 벌레가 나오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검수 과정에서 벌레가 발견되면 모든 상자를 개봉하여 전수조사를 하고 7~8번까지 씻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어 식재료의 전 처리(다듬고, 씻고, 데치고, 자르는 과정)가 시작된다. 식재료에 따라 다르지만, 이 과정은 1~2시간 걸린다. 쌀을 씻어 밥이 나오기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전 처리를 거친 식재료가 음식으로 조리되는 시간은 평균 2시간이다. 튀김이라도 제공하는 날이면 조리에 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남학교의 점심이 시작되는 11시 30분까지 4시간여 동안 조리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드디어 배식 준비가 되고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음식을 가득 담아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든 학생들의 반응을 영양사 선생님은 놓치지 않는다. 만족한 표정에 영양사 선생님의 표정도 한결 밝아진다.
 영양사 선생님은 학생들이 감각적인 맛에 길들어 있어선지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마련한 나물반찬, 호박과 감자를 넣어 끓인 된장국 등을 외면하는 현실이 아쉽다고 한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음식만 제공하면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잘못된 학생들의 입맛을 바로잡아 주는 것도 필요하기에 된장국도 나물도 빼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주 등산 후에 들른 음식점에서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고 그 다음이 우리 음식점의 밥입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 나는 우리 학교 점심이 집밥 다음으로 맛있는 밥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시는 교장 선생님과 영양사 선생님, 조리와 배식에 참여하시는 분들, 식재료 검수에 참여하시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이 이런 정성을 헤아려 잔반을 덜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수한 냄새가 교정을 감싸는 것을 보니 식당 조리실에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의 점심을 위하여 조리사분들이 한참 땀 흘리고 계시는가 보다. 무더워진 날씨 때문에 음식이 상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분들 덕분에 우리 제자들이 쑥쑥 커간다. 감사드린다.


교단일기
박기혁 교사 (세화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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