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엄마를 닮아있을 때, 어린 날 기억 속의 엄마 나이와 어느새 같다는 걸 생각할 때 깜짝 놀라곤 한다. 가정의 달 5월의 톡은 나이 들어가는 딸들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엄마가 되어 엄마를 생각하며 한 번도 털어놓지 못한 말을 지면에 실어본다.
리포터 공동취재
씩씩한 이 여사님! 지금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스물두 살에 큰 딸 낳고 이듬해 둘째 딸 낳아 생활력 약한 남편 대신 억척스레 살림 꾸려 가느라 늘 바빴던 우리 엄마. 저는 엄마의 힘든 등을 보며 자랐죠. 아무리 더듬어 봐도 엄마와 살갑게 지낸 기억이 저에겐 없어요. 자라면서는 엄마를 많이 원망했어요. 큰 딸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릴 때 저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미움이 늘 남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스물두 살이면 얼마나 어린 나이에요. 돈 벌고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이제는 엄마를 이해해요. 칠순의 할머니가 돼서 활기차게 노래교실 다니며 사는 우리 엄마 이 여사님! 지금처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 주세요.
-중산동 오미선(가명)씨
엄마, 미안하고 감사해요!
딸 넷, 아들 하나. 오남매를 반듯하게 키워주신 엄마 감사해요. 막내라 귀여움 독차지하고 자랐는데도 늘 언니들만 예뻐한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철부지 막내딸이에요. 늘 엄마사랑이 부족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되고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부족한 자식한테 마음이 더 쓰인다는 걸 아이를 길러보니 알겠어요.
지금도 전화하면 마흔이 넘은 딸한테 “우리 이쁜이”라고 힘을 주는 엄마. 시시콜콜 별별 이야기를 해도 늘 내편인 엄마. 엄마에게는 그렇게 늘 예쁜 딸이었는데, 그거 몰라줘서 미안해요. 엄마는 누구보다 나를 응원하고 있었는데….
엄마, 이제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다음 주에 갈게요.
-가좌동 최지우(42세)씨
엄마 노릇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철없을 땐 엄마 노릇하고 아이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어렸을 때 엄마가 가끔 피곤한 모습으로 누워계시곤 할 때 아무런 생각을 못했었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매일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야 했죠. 항상 요것조것 맛난 반찬 많이 싸주셨던 우리 엄마. 김치 시원하게 먹으라고 학교 가기 직전까지 냉동실에 넣어두셨다가 싸주시곤 하셨죠. 그렇게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이제는 나이 드신 엄마께서 자꾸 이곳저곳 몸이 안 좋다고 하실 땐 마음이 철렁해요. 부디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셔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주엽동 김미현 씨
이제 지난 슬픔은 잊고 행복하셨으면
스무 살에 7남매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아내에게 살갑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더 서러웠다는 우리 엄마. 그게 한이 돼서 딸들은 절대 맏며느리로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딸 넷이 줄줄이 맏이한테 시집가서 엄마 속이 시커멓게 삭아버렸다고 하셨었지.
그래도 우리 여섯 남매 시집 장가가고 다들 잘 살아주어서 늦복이 터졌다고 행복해하던 우리 엄마. 그런데 정말 하늘이 많지도 않고 꼭 그 정도인 엄마의 행복도 시샘한 것일까. 갑자기 막내아들을 잃고 웃음을 잃어버린 우리 엄마.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 하지만 엄마. 좋은 음식도 좋은 옷도 자식 앞세운 죄인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 이제 떨쳐 버리셨으면 좋겠어. 성재도 엄마의 이런 모습 바라지 않을 거야. 엄마의 환한 웃음 꼭 다시 찾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마두동 최영숙(54)씨
혼자서도 씩씩하게 사는 우리 엄마 박여사님!
오래간만에 편지를 드리네요. 엄마 칠순 때 잔치대신 가족끼리 식사하면서 그 때 엄마께 쓴 편지를 읽어드렸었죠. 지금은 우연한 기회에 엄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신문에 실어준다고 해서 다시 5년 만에 짧은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외로울까봐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노인복지관에 열심히 다니면서 씩씩하게 생활하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좋아요. 스마트폰 사용도 배워서 손주들한테 문자 넣으시는 것 보니 똑순이 엄마답구요. 자식은 부모한테 배워야 할 게 끝없이 많은 거 같아요. 엄마의 노년을 보며 저도 엄마처럼 지혜로운 어른이 돼서 살아가는 모습만으로 아랫사람에게 본이 되는 그런 노년을 준비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늘 우리들 곁에 있어주는 우리 엄마, 그것만으로도 너무 고맙습니다. 엄마! 봄이 가기 전에 우리 꼭 나들이 한번 가요.
-5월 봄날에 박춘옥 여사 딸 대화동 최혜경 씀
사랑하는 엄마께
이젠 제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엄마에게 못난 딸 이렇게 한 줄 적어 보냅니다. 맏딸과 목욕가고 시장가는 게 소원이라던 엄마의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어린 아들까지 맡겨 힘들게 했던 거 많이 후회돼요. 일주일에 한번씩 엄마의 소원이던 목욕시켜 드리러 갈 때마다 곱던 엄마를 생각하며 가슴이 아파요.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 엄마는 자식들 걱정에 기나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눈물로 기도하셨죠. 눈에 넣어도 안아픈 자식이라며 혹시나 흙 묻을까 걱정되어 흰 운동화 곱게 빨아 품에 안고 정류장까지 나오시곤 했던 엄마생각이 나요. 제일 이쁘게 보이라고 흰 칼라에 풀 메겨 칼날처럼 다려 주시던 엄마. 대학생이 되던 날, 아빠 몰래 목걸이 팔고 반지 팔아 롱부츠랑 코트까지 맞춰주시고 자랑스러워하셨지요.
이제는 엄마한테 잘 할 수 있는데...그렇게 원하던 외제 화장품도 사드릴 수 있고...
내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엄마가 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나쁜 딸은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엽동 최순주씨
평생 힘든 일 하신 엄마께 감사함 표현하며 사는 딸 될게요~
일 안하면 더 아프다며 환갑이 넘어도 간병인으로 일하는 엄마.
오늘 아이 학교 공개수업에서 감사편지를 쓰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쓰더라구요. 저도 서서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가정 버리고 간 아버지를 대신해 혼자 아버지 역할까지 하시며 우리 남매 키웠주셨던 엄마. 우유배달, 목욕탕 청소, 때밀이, 간병인까지. 몸을 많이 쓰는 일을 계속 하셔서 몸 이곳저곳이 아픈데도 묵묵히, 미련하리만큼 참으며 일하는 엄마 모습.
엄마의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엄마를 보는 것을 피해왔던 것 같아요. 참 괘씸한 딸이에요. 이제 저도 아이들 많이 키우고, 일도 시작하게 됐어요. 돈을 벌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뭔지 아세요? 엄마한테 용돈 보내드리는 거예요. 이제 철이 드나봐요. 아주 조금씩이겠지만,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며 사는 딸이 될게요. 사랑해요. 건강하셔야해요.
-마두동 위한겸(가명)
엄마! 나 이만하면 잘 사는 거니까 걱정 그만해도 돼~
시집가기 며칠 전, 엄마가 전화가 왔었지. 나처럼 살지 말라며 흐느끼던 엄마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 난 엄마처럼 가정에 충실하며 100점 주부로 지내고 싶었는데, 엄만 뭐가 그렇게 서러워 그랬을까. 40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 맘이 어땠는지 이해 될 것 같기도 해. 집이랑 애들한테 메여서 내가 하고 싶은 일 못하고 지내는 날 보면서 엄마는 늘 안쓰러워했지. 엄마~ 그래도 나 이만하면 잘 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미련이나 아쉬움, 걱정은 이제 접어도 돼. 나 충분히 행복하니까. 이젠 자식 걱정 그만하고, 엄마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맘껏 즐길 수 있길 바라.
-일산동 손은실(44) 씨
자식 키우면서 이제야 엄마 마음 조금 알 것 같아
엄마, 요즘 고2 아들을 키우며 많이 속상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땐 엄마 생각이 많이 나. 내 마음 몰라주는 자식이 밉고 야속할 때 ‘나도 우리 엄마한테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회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때 난 왜 그렇게 청개구리처럼 행동했는지, 아빠·엄마 얘기에 왜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날만 세우곤 했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그런 사춘기 딸의 반항을 감싸 안아주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주말까지 도시락 두 개씩 싸주며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자식 키워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덜컹거리는 마음을 누르는 것, 미울 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그거 쉬운 일 아니더라고요. 이제야 알겠어.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일산동 권오주(47)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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