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운정신도시, 가람마을 1단지 내에 있는 ‘한톨작은도서관’. 이곳은 5년 여 전만해도 책에 먼지가 가득하고 책장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방치됐던 곳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을 살리려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단지 내 입주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열린 책 문화공간으로 성장했다. 특히 도서관의 ‘공공성’을 고려해 내 아파트 단지 주민들만이 아닌,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의미가 더욱 깊다.
김수정 리포터 whonice@naver.com
지난 23일, 파주 운정신도시 가람마을 1단지 한톨작은도서관과 그 주변에서는 단지 내 주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함께 하는 ‘도서관 책 잔치’가 열렸다. 한톨작은도서관 개관 5주년을 기념한 행사였다. 이날 행사에는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해 도서 알뜰장터, 각종 체험과 전시,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책 잔치에 많은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 책도 사고팔고, 또 다양한 체험과 놀이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한톨작은도서관이 지금은 이렇게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흥겨운 책 잔치를 벌일 정도로 성장했지만 5년 여 전만해도 사람들 관심 밖에서 방치됐던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방치된 아파트 작은 도서관, 살려보자!”
지난 2010년 8월, 입주를 시작한 가람마을 1단지는 단지 내에 도서관이 있었지만 입주 후 1년이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건설사가 법령에 따라 도서관 공간을 만들고 도서 천여 권을 사다 놓았지만 그 뿐이었다. 운영할 주체나 운영 자금이 없다보니 도서관 문을 열지 못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책에 먼지는 쌓여갔고, 설상가상으로 공사 하자로 인해 도서관에 비까지 새 책장 곳곳은 곰팡이로 물들어갔다.
그러던 중 평소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입주민 몇몇이 이곳 도서관을 살려보자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바로 한가람초등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던 입주민이자, 학부형인 주부들이었다. 함께 방법을 찾다보니 길이 보였다. 관리사무소에 문의해보니 법적으로 10명 이상으로 구성된 자생동아리를 결성하면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이들은 도서관 운영을 위한 자생동아리를 만들어 아파트입주자대표위원회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도서관 운영자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 행동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2011년 말 오래도록 굳게 닫혔던 도서관을 임시 오픈했다. 삭막해진 도서관에 온기를 불어넣고자 운영진이나 봉사자들 모두 직접 발로 뛰며 움직였다. 유진희 도서관 운영위원은 “봉사자들이 도서관 벽에 직접 페인트칠도 하고 환경 미화도 손수 했다. 또 아이들이 편히 책 볼 공간이 없어 후원금으로 돗자리를 사다가 도서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봉사자들이 직접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도서관에 활기가 덧입혀지자 입주민들은 물론 인근 단지 주민들의 관심까지 이곳 도서관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도서관 운영진들은 파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의 조언을 받아 입주자대표위원회로부터 소정의 운영비를 지원받고 파주시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 지자체 도서관 공모사업 등을 통해 기금을 받는 등 도서관 운영 자금을 확보했다. 또한 건설사로부터 작은 도서관 건물 하자에 대한 구조 변경 비용을 받아 어린이들을 위한 바닥 온돌 공사를 하고 어린이 서가나 가구 등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4월, 한톨작은도서관을 정식으로 개관했다.
도서관의 공공성 살려 인근 지역 주민에게까지 개방
한톨작은도서관은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고려해 단지 내 입주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개방하고 있다. 문정아 한톨작은도서관 관장은 “도서관은 공공성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의 경우 ‘단지공화국’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들만의 리그가 되기 쉽더라. 외부인 출입 금지인 것이다. 한톨작은도서관의 장점이자 자부심은 단지 내 입주민만이 아닌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흡수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 주민이 아니더라도 지역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대출카드를 만들어 책을 대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톨작은도서관의 또 다른 자부심은 주민들로 구성된 봉사자들의 조직화된 활동과 열정이다. 현재 이곳 도서관에는 성인 봉사자 24명, 청소년 봉사자 20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조직에 따라 역할을 나눠 도서관 운영 전반에 대한 계획을 세워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고, 또 대출, 반납, 서가 정리, 프로그램 운영 지원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관장 및 도서관 운영진 역시 봉사자들로서 매년 선출하고 있다.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의 경우에는 도서 대출 반납 업무는 물론 어린이 이용자들에게 보드게임이나 전통놀이 등을 가르쳐주는 아동놀이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톨작은도서관 초창기 때부터 봉사를 하고 있다는 유진희 씨는 “아이들이 엄마가 봉사를 하니 자신들도 봉사를 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더라”면서 “한톨도서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딸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돼 여기서 악기 봉사를 하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유씨는 “나로 인해 내가 사는 사회가 조금이나마 건강해진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의 장점 살려 주민 목소리 세심히 반영할 것
한톨작은도서관에서는 연중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1년에 2번씩 5일간 테마를 정해 영화제를 개최하는데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서관 안이 꽉 차곤 한단다. 책도 읽고 책과 관련된 영화도 보는 영화제도 기획했는데 이용자들의 호응이 좋았다. 유아동부터 성인까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강좌와 프로그램들도 다채롭게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서가 옆, 빈 방을 활용해 나눔 카페도 운영 중인데, 지역 주민들이 맘 편하게 와서 차나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또 지역 내 동아리들이 공간을 대관해 사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영화 동아리, 독서 동아리, 바느질 동아리, 필사 동아리 등 다양한 주제의 동아리들이 이곳에서 자생하고 있다. 박미진 도서관 운영위원은 “작은도서관은 변화를 꾀하기 쉽고 주민과 맨투맨으로 접촉할 기회가 많아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잘 반영해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도서관의 본래 역할이 양질의 책을 제공하는 것인 만큼 좋은 책을 선정해 주민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미진 운영위원은 “작은도서관은 자칫 동네 사랑방 역할로 흘러가버리기 쉬운데 책이 중심이 되는 도서관, 책 때문에 오는 도서관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최근에는 보다 좋은 책을 선정해 구입할 수 있도록 수서팀을 별도로 조직해 운영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파트 단지 작은 도서관을 마을 속 활기찬 책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지역을 아우르는 지성과 문화의 샘터가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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