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로 개발된 평촌과 구도심으로 이루어진 안양,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고 오래된 건물이 재건축, 재개발이 되지만 새삼, 과거 안양의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안양에는 어떤 역사의 발자취가 있을까? 안양지역의 역사유적을 찾아 나섰다.
안양예술공원에서 삼국시대의 발자취를 느끼다
보물4호, 중초사지 당간지주
지난 선사시대 유적 답사에 이어 이번에는 안양지역의 삼국시대 유적을 찾아 나섰다. 우선 안양시 홈페이지의 사이버향토사박물관에서 안양시 문화재에 대한 예습을 한 후 삼국시대 유적으로 알려진 중초사지 당간지주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안양예술공원내 김중업박물관에 위치해 있다는 중초사지 당간지주.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시의 대표적인 명소로 여러 번 갔던 곳인데도 그런 문화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게 무지를 탓하며 안양예술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양예술공원 입구 왼편에 자리잡은 김중업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마다 마당 한켠에 높다랗게 서 있는 2개의 돌기둥 같은 것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그렇게 찾던 중초사지 당간지주다.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안양시 유일의 국가지정 유형문화재로 보물4호다. 당간지주는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불교 용구인 당(일종의 깃발)을 달기 위한 당간(깃대)을 고정해 주는 두 개의 지주대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중조사지 당간지주는 높이가 약 3.8미터로 상당히 높다.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지주 사이는 60cm로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가 위아래 2쌍이 있다. 높다란 깃대에 달려있는 깃발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의 높이 달려있는 깃발. 이곳에 중초사지가 있었다는 것은 당간지주에 새겨져 있는 명문으로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명문에는 신라 흥덕왕 원년인 826년 8월 6일에 채석하여 그 다음해인 흥덕왕 2년(827) 2월 30일에 세웠다는 명문이 있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절의 이름과 조성시기, 참여자 명단 등이 있는 당간지주로 알려져 있다. 당간지주 옆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중초사지 삼층석탑도 함께 볼 수 있다.
중초사지에서 안양의 과거를 마주하다
불교의 나라 신라. 우리나라 문화유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교유적이다. 중초사지는 신라후기의 사찰로 중초사지 당간지주의 명문에 의하면 당간지주를 조성하던 826년을 전후로 황룡사의 주통 항창화상이 이곳에 머물며 고사를 지휘한 기록으로 미루어 신라최대의 사찰이었던 황룡사와의 연관성과 사찰의 격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김중업 박물관이 있는 이 자리에 중초사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신라시대의 불교의 위상이 느껴진다. 중초사는 이후 10세기 초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안양사로 변경되어 16세기 중반까지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안양시에서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발굴한 결과 다수의 신라후기 중초사 강당 초석을 비롯해 신라시대 기와편, 청자 편 다수가 출토되었고 태조 왕건에 의한 고려시대 안양사 창건은 안양시의 지명유래에 대한 근원을 밝혀준 것이라 하니, ‘안양’이 실로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임에 웬지모를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현재는 김중업 박물관 마당에서 안양사터임 알 수 있는 초석들을 확인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상당한 규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안양예술공원 나들이 계획이 있다면 김중업 박물관에 들러 건축관련 전시회도 보고 옛 선조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석수동 석실분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안양
김중업 박물관에서의 감상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삼국시대 것으로 알려진 석수동 석실분을 찾아 나섰다. 지도상으로 김중업박물관 뒤쪽 삼성산 어디쯤이라는 대략적인 위치만으로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막막하기만 한 길. 안양사지관 뒤편 소형주차장 옆 골목에 석수동 석실분 이라는 표지를 발견하고 안도감이 들었다. 무작정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제대로 가는 것인지 고민이 들 때쯤 표지판이 다시 나타나길 대여섯번 삼성산 숲길을 따라 30분 쯤 올라왔을 때 쯤 드디어 석수동 석실분을 마주했다. 삼성산 구릉 정상부에 있어서 인지 아래로 안양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올라오기까지 힘들었던 마음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석수동 석실분은 화강암으로 축조된 삼국시대 것으로 해발 약 300m 정도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의 정상부를 향해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석실 내부는 길이가 3.3m, 폭 1.4m, 높이 1.5m로 실제로도 꽤 넓어 보였다. 안내판문에 의하면 연도가 생기기 이전의 초기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 세월이 아득하다. 횡혈식 석실분은 시신을 묻기 위해 널길을 통해 무덤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돌로 쌓아 만든 무덤으로 삼국시대부터 축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석수동 석실분은 도굴되었고 금귀걸이가 나왔다고 전하기도 하는데, 그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냥 모르고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의미를 알고 보내 새롭게 다가온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안양은 전과는 다르게 오랜 역사의 향기가 느껴진다.
신현주 리포터 nashu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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