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이야기1
초임 교사 시절 교무실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애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었는데 선배 교사 한분이 이런 답을 주셨다. “기억이나 하면 다행이지...” 교무실에 있던 모두가 소리내어 웃었고 뒤이어 약간은 씁쓸한 기운이 교무실을 채웠었다.
들어가는 이야기2
무선 공유기가 필요한 일이 생겼다. 한시적으로만 필요한 것을 돈을 주고 사기도 애매해서 큰 기대없이 페이스북에 올려 보았다. 몇분 지나지 않아 IT 쪽에 근무하는 제자가 자신의 공유기를 빌려주겠다고 답글을 달았다. 궁금했던 녀석의 근황과 요즘 그쪽 업계의 분위기도 들어볼 기회가 생긴 것 같다.
키팅 선생님(Mr. Keating)과 메나셰 선생님(Mr. Menasche)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혹시라도 선생님이 된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평생 그 영향력이 지속되는 존재. 그러나 막상 교사가 되어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영화처럼 학생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는 것도 싫고, 내가 학교를 떠나는 상황이 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그저 학생들과 잘 통하는 담임 선생님이고 싶었고 특히 고3 담임일 땐 대학을 잘 보내는 선생님이고 싶었다. 수업을 통해서는, 큰 감동을 주는 것 보다는 작은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십 수년을 지내다 다비드 메나셰(David Menasche)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대담하게도 이런 질문을 한다. “내가 정말로 아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긴 했나?” 나로서는 이제 입 밖에 꺼내기 주저하는 그런 질문 말이다.
삶의 끝에서(어쩌면 삶의 한 복판에서)
「삶의 끝에서」 이 책은 저자가 암 진단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해 미국 각지의 옛 제자들을 찾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각 장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긴 사건들, 투병 과정 중에 생긴 일, 그리고 ‘나를 되찾는 여행’이라 이름 붙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각 장의 끝에는 해당 사건의 관련 학생이나 친구의 글이 덧붙어,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시점을 볼 수 있어 신선하고 또 감동적이었다. 공감하는 대목, 교사로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일화, 그리고 눈물이 핑도는 뭉클한 이야기도 많았다. 특히 148페이지의 내용이 강렬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오늘이 지나면 항상 내일이 기디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을 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운다. 삼키기 힘든 교훈이다. 이제야 겨우 사는 법을 배웠는데 곧 죽는다니.”
Memento Mori(‘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라는 말이 떠올랐고, 나는 사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난 아직도 죽음의 존재는 한쪽에 제쳐두고 계속 내일이 있을거라 믿고 내일에는 지금은 없던 힘이 의지가 생겨날 거라 믿으며 살고 있었다.
우선 순위 리스트(The Priority List)
이 책의 원제목은 The Priority List(우선 순위 목록)이다. 이 용어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 평소 학생들에게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묻고 그에 대한 글을 쓰게 했던 교사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남아있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수업을 계속한 것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수업’ 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학교 밖의 수업’을 하고자 제자들을 찾아 떠난다.
나도 ‘생애전환기’를 지났다. 만 40이 넘으며 첫 번째 든 생각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길지 알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죽어도 요절했다는 말은 들을 수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이란 생각이었다. 나도 내 리스트를 정비하고 더 늦기전에 해야할 일들을 꼭 해야겠다.
마치는 이야기1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사는 학생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한다. 초임교사일수록 그 마음이 강하고 경력이 쌓일수록 그 마음이 옅어진다. 변화되지 않는 학생들에 좌절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교육정책이나 관습에 지쳐가고 몇몇 무례한 학부모의 요구에 시달리다보면 그렇게 된다. ‘나는 그렇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나도 초심에서 많이 떠나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내가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 나의 말보다는 행동과 생활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될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사는게 좋은 것일까? 꾸며서 더 좋은 인간상을 보이려 했다가는 금방 밑천이 드러날 것 같고,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하도록 힘써야겠다.
마치는 이야기2
유명한 축구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SNS는 시간 낭비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여행이 시작된 것도, 이러한 책이 나와 감동을 주게 된 뒤에는 페이스북이라는 매체가 있었다.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강조하는 ‘소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지금의 통신수단이나 앞으로 나타날 소통수단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이제 몇시간 후면 위에서 말한 제자가 무선 공유기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오랜만에 용기를 내서 물어봐야겠다.
“넌 내가 가르친 것 중 어떤 것이 기억나냐? (혹시라도 기억이 난다면...)”
서현고등학교 추진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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